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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100년, 인생100년 ⑥ - 로마의 휴일
  • silverinews 진고개 신사
  • 승인 2018.10.11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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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100년, 인생100년 ⑥ - 로마의 휴일
 
 
  - 제작 : 1953년, 미국
  - 감독 : 윌리엄 와일러
  - 배우 : 오드리 헵번, 그레고리 팩, 에디 알버트 외
  - 필름 : 흑백
  - 상영시간 : 118분
  - 수상 : 아카데미 영화제 여우주연상, 각본상, 의상상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
 
 
 
 무명에 가까웠던 오드리 헵번을 일약 할리우드의 신데렐라로 만든 웰 메이드 로맨틱 코미디영화. ‘로마의 휴일(Roman Holiday)’은 서로 사랑하지만 신분의 차이로 인해 헤어질 수밖에 없는 두 남녀의 짧은 러브스토리를 다뤘다. 요즘 시각에서 보면 너무 뻔하고 식상한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각본과 빛나는 연기, 화려한 의상과 많은 볼거리, 윌리엄 와일러 감독 특유의 품위 있는 내러티브 덕분에 ‘로마의 휴일’은 결코 유치하지 않은 고전 명작의 하나로 남게 되었다.
 
 ‘폭풍의 언덕(1939)’ ‘벤허(1959)’ ‘우리 생애 최고의 해(1964)’ 등 숱한 걸작을 남긴 명장 윌리엄 와일러(1902~1981) 감독은 할리우드 사상 최초로 로마 로케이션 촬영을 감행하여 이 영화를 찍었다. 콜로세움, 트레비 분수, 스페인 광장, 마르첼로 극장, 산타 젤로 성당, 진실의 입 등 유서 깊은 로마 시내의 아름다운 풍광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틀에 박힌 엄격한 생활에 염증을 느낀 한 공주의 일탈 행위와 그녀의 스캔들을 취재해 특종을 얻으려 한 미국인 신문기자가 우연히 만나면서 벌이는 해프닝을 경쾌한 리듬으로 터치했다.
 
 소문난 영화에는 언제나 그에 상응하는 캐스팅 비화가 있기 마련. ‘로마의 휴일’도 예외는 아니다. 제작사는 애초 남자 주인공 역에 미남배우 캐리 그랜트를 섭외하려 했으나 그는 상대 역 오드리 헵번과 나이 차이가 너무 난다는 이유를 들어 거절했다(당시 오드리 헵번은 24세, 캐리 그랜트는 49세였다. 그러나 정확히 10년 후 두 사람은 로맨틱 미스터리영화 ‘샤레이드’에서 완벽한 호흡을 맞추게 된다). 오드리 헵번이 연기한 앤 공주 역할도 당초에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진 시몬즈가 물망에 올랐으나 개런티와 스케줄 등의 이유로 섭외는 성사되지 못했다.
 
인생에서 가장 멋진 로마의 하루
 
 유럽 각국을 친선방문 중인 앤 공주(오드리 헵번)가 런던, 암스테르담, 파리를 거쳐 로마에 도착한다. 꽉 짜인 일정, 엄격한 의전과 격식에 갇힌 일상에 숨 막혀 하던 그녀는 숙소 밖에서 벌어지는 시민들의 파티 모습을 보고 일탈의 충동을 느낀다. 결국 그녀는 평상복 차림을 한 채 경비의 눈을 피해 대사관저를 빠져나와 번잡한 로마시내로 향한다.
 
 아메리칸 뉴스서비스의 기자 조 브래들리(그레고리 팩)는 어두운 밤 집으로 향하던 길에 공원 돌담 위에서 잠에 빠져 있는 한 여인을 발견하고 자신의 허름한 아파트로 데려와 재워준다. 다음 날로 예정된 공주와의 인터뷰에 참석할 계획인 조는 편집장으로부터 앤 공주 관련 특종기사 독촉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한편 공주의 부재 사실을 알게 된 대사관측은 스캔들 발생을 우려해 공주의 행방불명 사실을 함구에 부치고, 공주가 와병 중이므로 모든 일정을 잠정 중단한다는 거짓 성명을 발표한다.
 
 이튿날, 조는 신문에 실린 공주의 사진을 본 뒤 자신의 침대에서 잠든 여인의 정체를 알게 되지만 일부러 내색하지 않는다. 해가 중천에 떠오를 때까지 늘어지게 자고 난 공주는 조에게 500리라를 빌려 거리 구경에 나서고, 조는 그런 공주의 뒤를 미행한다. 서민들의 삶이 마냥 신기하기만 한 공주는 미용실에 들러 긴 머리를 싹둑 잘라버리는가 하면 길거리에서 젤라또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 등 자유를 만끽한다.
 
 공주의 뒤를 밟던 조는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통해 그녀와 카페에서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학교에서 도망 나온 여학생, 평범한 세일즈맨이라고 서로의 신분을 속인 두 사람은 곧 의기투합하여 인생에서 가장 멋진 하루를 즐기기로 약속한다. 그러나 특종에 목마른 조는 동료 사진기자 어빙(에디 알버트)에게 공주의 정체를 귀띔해 주고 둘의 일거수일투족을 비밀 촬영해 줄 것을 부탁한다.
 
 앤과 조는 스쿠터를 타고 로마 곳곳을 누빈다. 앤의 서투른 운전솜씨로 시가지를 온통 엉망으로 만든 두 사람은 경찰서에 끌려가기도 하고, 유람선에서 열리는 댄스파티에도 간다. 두 사람이 온갖 해프닝으로 특종 감을 양산하는 사이, 궁에서는 비밀요원을 파견하여 공주의 신병을 확보하려 한다. 비밀요원과 조 사이에 격투가 벌어지고 앤은 강물로 뛰어들어 위기를 모면한다.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된 두 사람은 비로소 서로에 대한 야릇한 감정을 느끼게 되지만 공주가 귀환할 시간이 다가오자 뜨거운 키스로 작별인사를 대신한다.
 
 다음날. 앤 공주의 공식 인터뷰가 열린다. 으리으리한 대접견장은 각국의 언론사 기자들로 붐빈다. 공주가 우아한 모습으로 기자들 앞에 서던 순간, 그녀는 그 자리에 와 있는 조를 보고 흠칫 놀라 순간 당황한다. 공주와 조 사이에 의미심장한 질문과 답이 오가고, 공주는 이례적으로 기자들과 악수를 나누겠다며 단상을 내려온다. 드디어 조와 악수할 차례가 되었을 때 조와 동료 어빙은 공주에게 로마방문 기념선물이라며 작은 봉투 하나를 건넨다. 거기에는 공주와 조가 보낸 즐거웠던 순간을 담은 사진들이 들어 있었다. 잠시나마 사랑의 감정을 가졌던 사람에 대한 배려였을까. 조는 특종을 포기한다. 혼란스러운 표정의 공주는 말없이 돌아서고 조 역시 모두가 떠난 인터뷰장을 쓸쓸히 걸어 나온다.
 
‘헵번스타일’의 시초를 만나다
 
 당시 영화계의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던 오드리 헵번(1929~1993)은 이 영화 한 편으로 하루 아침에 할리우드의 요정이 되었다. 1950년대 초 팬들에게 각광받는 여배우들은 풍만한 육체를 트레이드마크로 하는 글래머 스타들이었다. 소피아 로렌, 엘리자베스 테일러, 실바나 망가노, 지나 롤로브리지다 등 소위 육체파 여배우들이 영화판의 주류로 인정받던 시기에 발레리나 출신으로 개미허리를 가진 날씬한 몸매(170cm, 49kg)의 오드리 헵번을 캐스팅하는 것은 일종의 모험처럼 여겨졌다. 게다가 그녀는 스스로도 인정했듯이 사각턱에 가까운 핸디캡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오드리 헵번은 끈적거림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청순한 이미지, 바라만 봐도 최면에 걸릴 것처럼 매혹적인 커다랗고 맑은 눈, 발레로 다져진 천부적 몸매, 빼어난 패션 감각으로 단숨에 ‘만인의 연인’의 자리에 올랐다. 한마디로 그녀는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영묘(靈妙)한 이미지’를 지닌 여배우였다.
 
 한 마리 암사슴처럼 좌충우돌 뛰노는 공주마마 연기로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 그녀는 이 영화로 미국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과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 영국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모두 휩쓰는 기염을 토했다. 이후 ‘사브리나(1954)’ ‘화니 페이스(1957)’ ‘파계(1959)’ ‘티파니에서 아침을(1961)’ ‘샤레이드(1963)’ ‘마이 페어 레이디(1964)’ ‘어두워질 때까지(1967)’ 등 일련의 화제작에 출연하며 흥행보증수표로 인정받았다. ‘로마의 휴일’에서 거리의 미용실에 들러 긴 머리를 싹둑 잘라버리고 상큼한 단발로 변신하는 모습(위 사진)은 매우 인상적이다. 이것이 그 유명한 ‘햅번 스타일’의 전조를 알리는 장면이다.
 
 ‘젠틀맨’이라는 단어가 딱 어울리는 그레고리 팩(1916~2003)은 존 웨인과 더불어 가장 미국적인 배우로 불린다. 큰 키(191cm)에 지적이며 부드러운 인상, 뚜렷한 윤곽과 짙은 눈썹, 저절로 품위와 젠틀함이 배어나오는 외모는 그를 가장 ‘완벽한 신사’라고 부르게 만든다. 그는 외모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매우 도덕적이고 올바른 품성을 지닌 인간으로 평가됐던 배우다. 영화 속 조 브래들리 역시 인간 그레고리 팩의 품성을 그대로 지닌 듯한 인물이다. 천방지축 같은 앤 공주를 연기한 오드리 헵번의 곁에서 지그시 중심을 잡아주던 그의 중후한 존재감이 딱 그래 보인다. 1952년 작 ‘킬리만자로의 눈’을 비롯해 그가 출연한 ‘백경(1956)’ ‘나바론 요새(1961)’ ‘앵무새 죽이기(1962)’ ‘빅 컨트리(1963)’ 등은 국내 올드팬들이 많이 기억하는 영화다. 인종차별과 싸우는 시골변호사 애티커스 핀치로 분(扮)해 열연했던 ‘앵무새 죽이기’는 그에게 아카데미 주연상을 안긴 작품이기도 하다.
 
품격 있는 이별이 전하는 감동
 
 ‘로마의 휴일’은 과거 TV 명화극장 프로그램을 통해서 여러 차례 방송된 영화이다. 요즘도 서울 종로 실버영화관(구 허리우드극장)에서 심심찮게 상영된다. 대단히 화려하거나 스펙터클하지 않으며 극히 통속적인 이야기 구조를 가진 이 영화가 이토록 오랜 시간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오드리 헵번의 신선한 연기, 튀지 않으면서도 극의 흐름을 적절히 뒷받침하는 그레고리 팩의 중량감, 정통과 품격을 트레이드마크로 삼는 윌리엄 와일러의 독보적인 연출 솜씨 덕분이 아닐까 싶다. 특히 이 영화의 라스트는 품격 있는 연출의 전형을 보여주는 듯 압권이다.
 
 기자들과 악수를 마치고 돌아서던 공주는 조를 향해 환한 미소를 던진다. 그러나 그 미소는 석별의 아쉬움과 알 수 없는 복잡한 심경이 뒤섞인 표정으로 바뀐다. 앤은 수행원에 둘러싸여 퇴장하고, 모두가 돌아간 홀에는 조만 홀로 남는다. 잠시 뒤 바지주머니에 두 손을 깊이 찌른 채 천천히 발길을 돌리는 조. 번쩍이는 대리석 위를 뚜벅뚜벅 내딛는 그의 구두소리가 쓸쓸하게 홀을 울리고, 조는 왠지 모를 상실과 고독감을 느낀다. 걸음을 멈추고 다시 공주가 서 있던 자리를 바라보며 짧은 상념에 빠지는 조. 먹먹함과 그리움을 애써 외면하려는 듯 조는 이내 무거운 발걸음을 돌린다.
 
 넘치지도 않고 모자람도 없는 ‘궁극의 절제미’에서 오는 진한 여운과 감동. 기품 있는 연출이 전하는 ‘고전(古典)의 향기’란 이런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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