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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100년, 인생100년 ㉙ - 25시
  • silverinews 진고개 신사
  • 승인 2019.06.01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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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100년, 인생100년 ㉙ - 25시
 
 
  - 제작 : 1967년, 프랑스․이탈리아
  - 감독 : 앙리 베르누이
  - 배우 : 안소니 퀸, 비르나 리지 외
  - 필름 : 컬러
  - 상영시간 : 115분
 

 

 ‘25시(The 25th Hour)’는 콘스탄틴 버질 게오르규(1916~1992)가 1949년 발표한 소설이다. 루마니아 정교회 소속 사제였던 작가가 수용소 체험담을 바탕으로 저술한 이 작품은 2차 세계대전의 직격탄을 맞은 동유럽 약소국의 한 소시민이 겪은 파란만장한 인생유전을 통해 전쟁의 참상과 권력의 폐해를 고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5시’란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시각이다. 작가가 인간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1시간을 제목에 사용한 것은 세상이 그만큼 불확실하고 절망적인 상태에 놓여있음을 상징한다. 작가는 지상에 존재하지 않는 시간 개념을 통해 모든 구원이 차단된 절망과 극한의 상황, 인간성이 상실된 야만의 시대를 노래하는 것이다.
 
‘25시’는 유대인이라는 굴레가 씌워져 독일군 수용소로 보내진 한 농부가 그로부터 10여 년 가까이 가족과 생이별한 채 여러 나라를 전전하며 집시처럼 떠돌아야 했던 기구한 운명을 묘사한 것으로, 프랑스 감독 앙리 베르누이에 의해 영화화됐다.
 
영문도 모른 채 사지로 끌려간 농부는 애타게 구원의 시간을 기다리지만 정신적 자유와 안식을 박탈당한 그에게 남겨진 것은 철저히 찢겨진 자아와 영혼뿐. 설사 메시아가 강림한다 해도 구원의 손길이 닿을 수 없을 만큼 세상의 막다른 곳에 버려진 사내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결정된 운명을 살며 시대의 희생양으로 전락한다.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온 뒤에도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그의 인생은 그 어디에서도 위로받지 못한다.
 
하루아침에 유대인이 된 사내
 
1939년 루마니아의 평화로운 시골마을 폰타나. 순박한 농부 요한 모리츠(안소니 퀸)와 그의 아름다운  아내 수잔나(비르나 리지)는 성당에서 둘째 아들 안톤의 세례식을 치른다. 마을사람들도 아이의 세례를 축하하기 위해 성당으로 모이고, 마을은 축제 분위기에 빠진다. 포도주와 소박한 음식을 사이에 두고 음악과 춤에 빠져 흥겨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요한을 아끼는 코루가 신부(리암 레드몬드)와 그의 아들 트라이얀(세르주 레지아니)도 요한의 집으로 찾아와 축복을 나눈다.
 
바로 그때, 주민들의 평화를 찢듯 히틀러의 선동적인 목소리가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온다. 히틀러가 마침내 체코를 침공한 것이다. 갑자기 싸해진 분위기로 주민들의 흥은 깨져버린다. 작가인 트라이얀은 “지금은 혼란의 25시예요. 과연 누가 살아남을까요.”라며 탄식한다.
 
마을의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서장 두브레스코(그레고르 아슬란)는 평소 수잔나의 미모에 눈독을 들여 호시탐탐 그녀를 어찌해보려고 수작을 부리는 인물이다. 오늘도 그는 수잔나의 집 앞을 지나며 그녀에게 치근댄다. 대문을 걸어 잠근 채 쌀쌀맞게 대하는 수잔나를 향해 서장은 “남편이 없어지면 문을 열어줄 거냐.”며 의미심장한 농을 걸어온다. 수잔나는 같지 않은 서장의 말을 흘려듣는다.
 
얼마 후, 우려했던 일이 실제로 발생한다. 요한에게 경찰서로 출두하라는 소환장이 날아든 것. 유대인과 불순분자 분리 정책에 따라 요한 모리츠는 수용소로 보내질 운명이 된다. 서장 두브레스코의 흉계로 요한의 신분이 하루아침에 유대인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요한이 유대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마을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서장은 “이곳의 법은 내가 정한다.”는 억지를 부리고, 결국 요한은 서장과 대면도 하지 못한 채 어디론가 끌려간다. 요한이 사라지자 서장은 다시 수잔나를 찾아온다. 그가 집 안으로 발을 들여놓으려 하자 수잔나는 벽돌을 집어던지며 거칠게 저항한다. 서장은 이를 갈며 돌아선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늘어선 유대인의 행렬. 그 무리에 섞여 요한이 도착한 곳은 방호진지를 구축하는 노역장이다. 요한은 그곳 관리에게 자신은 유대인이 아니라고 강변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다. 진실을 모르는 유대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비굴한 유대인이라며 되레 요한을 나무란다.
 
그로부터 5개월의 시간이 지나고, 아내 수잔나는 남편의 억울함을 밝히기 위해 관청을 찾지만 무성의한 관리들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요한 역시 아내에게 열 통이 넘는 편지를 쓰지만 수용소 검열에서 모두 폐기된다. 시간은 조그만 희망의 빛도 보이지 않고 암흑의 끝을 향해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해가 바뀐 1940년 10월. 독일군이 루마니아에 진격하여 나라는 온통 나치의 세상이 된다. 미련을 못 버린 서장은 다시 수잔나를 찾아와 찝쩍댄다. 수잔나는 그런 서장에게 엽총을 쏘며 경고한다. 깜짝 놀란 서장은 꽁지 빠지게 도망가면서 “유대인 재산은 몰수대상이니 집이라도 지키고 싶으면 요한과 이혼한다는 서류에 사인하라.”는 말을 남긴다. 수잔나는 두 아들과 살아갈 집을 지키기 위해 하는 수없이 이혼서류에 서명한다. 그리고 수용소에서 이혼 사실을 통고받은 요한은 충격에 빠진다. 실의의 나날을 보내고 있던 요한은 다른 유대인들과 함께 수용소를 탈출하기로 마음먹는다.
 
1940년 11월. 요한과 유대인 3명은 루마니아의 수용소를 탈출해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도착한다. 요한은 함께 탈출한 유대인들과 미국으로 건너가려 하지만 그는 유대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배표를 구하지 못한다. 결국 일행과 찢어진 요한은 갈 곳이 없어 거리를 배회하다 불심검문을 받고 헝가리 당국에 체포된다.
 
간첩으로 오인받은 요한은 고문을 받는다. 수용소에 11개월간 갇혀있었던 사실을 말해도 유대인이 아닌 그가 수용소에 있었다는 진술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1942년 12월, 독일은 헝가리에 노동자 차출을 요구한다. 그러자 헝가리 당국은 구금하고 있던 요한을 헝가리인으로 둔갑시켜 독일 오렘버그 수용소로 보내버린다.
 
수용소 강제노역장. 작업장을 둘러보던 SS친위대 뮐러 대령(마리우스 고링)은 요한을 눈여겨보던 중 그의 이목구비와 신체조건이 남다르다는 점에 주목한다. 뮐러 대령은 요한의 두개골 형태, 흉부와 쇄골 구조 등을 보았을 때 그는 헝가리인이 아니며 매우 우수한 아리안 혈통을 지닌 순수 게르만의 후예라고 단정한다.
 
뮐러 대령의 뜻에 따라 하루아침에 위대한 게르만의 표상이 된 요한에게는 SS친위대 제복이 입혀진다. 그리고 모든 신문과 잡지에 그의 사진과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린다. 자신의 뜻과 전혀 상관없이 유대인, 헝가리인이 되었다가 이제는 게르만이 된 요한. 어쨌든 요한은 그날부터 강제노동에서 열외 되고, 수용소 경비병으로 근무하게 된다.
 
시간은 흐르고 또 흘러 1944년 4월이다. 독일군은 전선에서 후퇴를 거듭하고 러시아군은 루마니아를 장악한다. 나치에 충성했던 두브레스코 서장은 유격대원들에게 체포된다. 상황이 역전되자 코루가 신부는 수잔나에게 달려와 잡지에 실린 요한의 사진을 보여준다. 반역자의 가족으로 낙인찍힐까 걱정된 신부는 수잔나에게 도피할 것을 주문하지만 수잔나는 남편이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것을 위안 삼는다.
 
패전이 다가오면서 이제 독일군의 제복은 요한에게 짐이 된다. 그러던 중 요한은 포로들에게 총질을 하던 독일군을 얼떨결에 사살하게 된다. 요한은 그길로 트럭을 몰아 포로들과 함께 미군에 투항한다. 그러나 함께 탈출한 포로들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미군은 독일군 신분의 그를 수용소에 감금한다. 다시 포로의 몸이 된 요한은 마침 그곳에서 트라이얀 씨와 조우한다. 정치범으로 독일 수용소에 구금돼 있던 트라이얀 씨는 이제는 나치 협력국인 루마니아 국민이라는 이유만으로 수감돼 있는 상태다.
 
미군 수용소에 갇혀 지낸지도 무려 17개월이 흐른 1946년의 9월. 요한은 트라이얀 씨로부터 아내 수잔나가 아이들과 함께 폰타나를 떠났다는 사실을 전해 듣는다. 또 코루가 신부가 감금되었으며, 성당은 문을 닫았고, 트라이얀의 어머니도 사망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트라이얀은 유대인인 자신의 아내 역시 죽었을 거라고 말한다. 미치광이들로 가득한 세상이 절망적이기만 한 트라이얀은 “더 이상 보고 싶은 것이 없다.”며 쓰고 있던 안경을 벗어 요한에게 맡긴다.
 
“전에 쓰려고 했던 책이 있잖아요. 우리 모두에 대해 쓴다고 하던.”
“어머니께서 마지막으로 제목을 지어주셨지. ‘25시’라고.”
“맞아요. 글을 쓰세요.”
“요한, ‘25시’는 마지막 시간을 의미하네.”
 
그 말을 끝으로 트라이얀은 미군의 경고를 무시하고 출입금지 구역까지 계속 걸어가다 총을 맞고 철조망 위에 쓰러져 숨진다. 더 이상의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숨 막히는 세상의 끝에서 그는 스스로 죽음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요한이 고향을 떠나온 지 어느덧 8년이 흐른 시점. 여기는 전범재판이 열리는 뉘른베르크의 군사법정이다. 군 검찰은 요한의 기사와 사진이 실린 잡지를 근거로 그가 나치 숭배에 앞장섰다며 처벌하려 한다. 반면 요한의 변호인은 피고 스스로도 지난 세월동안 자신이 왜 이리저리 끌려다녔는지 이유를 모르고 있다며 그가 무고한 피해자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변호인은 수잔나의 편지를 낭독한다. 검열 때문에 단 한 번도 요한이 받아보지 못했던 그 편지에는 요한 만큼이나 시련의 세월을 살아야 했던 수잔나의 눈물 어린 이야기가 빼곡히 담겨 있었다.
 
편지에는 이혼서류에 강제 서명한 이유, 집을 버리고 독일로 피신해 있는 동안 러시아군이 쳐들어와 겁탈당한 일, 수치스럽지만 그럼에도 남편에게 이런 사실들을 숨길 수 없는 심정, 아이들 때문에 죽은 사람처럼 지낸 시간들, 그 결과 또 한 명의 아들을 갖게 된 사실이 쓰여 있었다. 수잔나는 끝으로 "당신이 안 보겠다고 해도 좋으니 답장만은 꼭 해 달라.”며 애원하고 있었다. 변호인은 “재판장의 판결이 이 여인이 기다리는 답장이 될 것.”이라는 말로 변론을 마친다.
 
장면이 바뀌고 1949년 11월의 어느 오후. 요한이 집을 떠나온 지 햇수로 10년이 지난 그때 독일 작은 도시의 기차역으로 열차 한 대가 들어온다. 허름한 짐 보따리 하나를 가슴에 안고 기차에서 내리는 인물은 요한 모리츠. 어느덧 희끗해진 머리칼이 여기저기 돋아난 그의 모습에서 지난 세월의 고단한 흔적이 엿보인다. 잠시 머물렀던 기차가 역을 빠져나가자 요한은 철로 반대편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수잔나와 아이들을 발견한다.
 
천천히 기찻길을 건너는 요한.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흘러 지금은 많이 늙어버린 두 사람의 재회. 왠지 모를 서먹함과 죄책감, 야릇한 감정에 둘은 쉽사리 끌어안지도 못한다. 대신 요한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몰라보게 커버린 두 아들의 얼굴을 번갈아 살핀다. 그리고 수잔나의 손을 꼭 쥐고 서 있는, 유난히 금발이 도드라져 보이는 막내에게도 눈길을 돌린다.
 
시간이 멈춘 듯 어색함이 흐르던 그때. 요한과 관련한 기사를 쓰는 기자가 역 구내로 들어온다. 기자는 다짜고짜 사진촬영을 하겠다며 막내를 들어 요한의 품에 안긴다. 기자는 플래시를 터뜨리며 웃어줄 것을 요구한다. “웃으라고요, 활짝 웃어요, 자 더 기쁘게 웃어요!” 이 돌발 상황에 요한과 수잔나는 불편함을 느끼지만 기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웃어달라고 요구한다. 연신 터지는 플래시․․․․․․. 카메라를 바라보는 요한의 얼굴은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표정으로 바뀐다. 그럼에도 계속 웃으라는 기자의 강요. 마침내 요한의 표정은 거의 울어버릴 듯 구겨져 버린다.
 
비극의 디아스포라, 요한 모리츠
 
한 순박한 농부가 역사의 격랑에 휩쓸려 철저히 인간성을 유린당하는 과정을 그린 ‘25시’는 절대 권력을 지닌 국가와 그 하수인인 위정자, 군인, 관료들이 마음먹기에 따라 무력한 개인을 얼마나 철저히 짓밟을 수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기는 언론도 마찬가지다. 특종을 위해서라면 파렴치한 짓도 마다치 않는 언론의 속성을 비추는 라스트는 쓴웃음을 불러온다.
 
주인공 요한 모리츠를 지켜보노라면 오래전 극적인 인생을 살다 간 어느 한국인을 떠올리게 된다. 그의 이름은 양경종(1920~1992)이다. 신의주가 본적으로 알려진 이 사내는 일제 치하인 1938년 일본 관동군에 끌려가 노몬한 전투에 투입되었다가 러시아군에 사로잡힌다.
 
1943년 여름 러시아군에 편성돼 우크라이나 전선으로 보내진 양경종은 이번에는 독일군의 포로가 된다. 그다음 독일군 소속으로 노르망디 전투에 투입된 그는 1944년 6월에는 미군에게 생포돼 영국의 포로수용소로 보내지게 된다.
 
▲미군 수용소에서 조사받는 양경종의 모습
1947년 석방 뒤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1992년 일리노이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11년 장동건과 일본배우 오다기리 조가 공연한 ‘마이웨이(강제규 감독)’는 그의 일생을 모티브로 만든 영화다.
 
실존 인물 양경종과 영화 속 주인공 요한 모리츠의 삶은 여러 면에서 닮아있다. 힘없는 나라의 국민으로 태어나 조국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그들은 정체성을 상실한 채 낯선 땅을 전전하며 살아야 했던 ‘25시의 인간들’이자 비극의 ‘디아스포라’다.
 
종전이 되었지만 그들의 조국도, 패전국 독일도, 승리한 연합국도 피해자의 상처를 어루만지지 못했다.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이기든 지든 희생자의 눈물은 아무도 닦아주지 않는 법’이라고. 그럼에도 세계 곳곳은 아직도 전쟁으로 신음하고 있다. 세상은 여전히 ‘25시’의 암흑이다.
 
 

silverinews 진고개 신사  news1@silver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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