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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100년, 인생100년 ㉟ - 꽁치의 맛
  • silverinews 진고개 신사
  • 승인 2019.08.01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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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100년, 인생100년 ㉟ - 꽁치의 맛
 
 
  - 제작 : 1962년, 일본
  - 감독 : 오즈 야스지로
  - 배우 : 류 치슈, 이와시타 시마 외
  - 필름 : 컬러
  - 상영시간 : 112분
  - 수상 : 제66회 칸영화제 클래식부문 상영
 
 
 
 요즘처럼 한-일 관계가 얼어붙은 시기에 웬 일본영화냐고 불만하실 분이 있으리라. 하지만 정치적 사안을 두고 경제적으로 보복하는 일본의 처사가 분명 잘못이듯, 정치관계에서 촉발한 감정 때문에 문화예술을 통한 양국 시민의 정서적 교감마저 금기시하려는 분위기도 경계해야 할 점이다.
 
두 나라 간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고 방탄소년단의 일본 공연을 금지시키고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의 한국 내 출판을 불허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하물며 거장 오즈 야스지로의 작품 앞에서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고 논쟁하려 든다면 이는 지극히 유감스럽고 소모적인 일이다.
 
 
거장 ‘오즈’ 인생의 유작
 
1927년 ‘참회의 칼’로 영화계에 데뷔한 오즈 야스지로(1903~1963)는 일생동안 54편의 작품을 발표했다. 그에게 세계적 명성을 가져다준 ‘동경이야기(1953)’를 비롯한 다수의 작품에서 소시민의 가정사를 통한 사회문제와 인간 본성의 깊은 이해를 구하려했던 오즈는 구로사와 아키라, 미조구치 갠지와 더불어 일본 영화계를 상징하는 3대 거장 중의 한 명으로 꼽힌다.
 
일명 ‘다다미 쇼트’라고 명명된 극한의 로우 앵글과 정적인 화면은 오즈만의 트레이드마크다. 그는 제한된 기교와 느린 템포 안에서 인간의 슬픈 감성을 자극하려 들 뿐, 그 어떤 호들갑도 떨지 않는다. 사회의 문제점을 건드리되,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뿐 앞서서 비난하려 들지 않는다. 관객 스스로 성찰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안내자 역할에 충실하려 했던 사람이 오즈다. 이처럼 느낌을 강요하지 않는 차분함과 세상을 바라보는 온화한 시선이야말로 오즈의 영화를 사랑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요인이다.
 
1940년대 후반 이후에 나온 오즈의 작품들은 가족문제를 둘러싼 유사한 주제를 여러 가지 형태로 변주하는 형식으로 만들어진다. ‘꽁치의 맛(秋刀魚の味)’ 역시 가족 중심의 홈드라마로, 전작 ‘만춘(1949)’과 흡사한 스토리 구조를 보여준다. 아내와 사별하고 외롭게 살아가는 초로의 남자가 혼기가 닥친 딸의 문제로 겪게 되는 딜레마를 그린 ‘꽁치의 맛’은 안타깝게도 오즈의 최후 유작이 되고 말았다.
 
‘꽁치의 맛’에 배어 있는 유달리 깊은 고독과 쓸쓸함의 정서는 예사롭지 않다. 오즈가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작업하던 중 86세의 노모가 그만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는데, 어머니의 죽음은 영화의 분위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오즈는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어머니를 모셨다. ‘꽁치의 맛’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와중에 완성됐다. 그리고 이듬해 오즈 자신도 지병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났다.
 
혼기 꽉 찬 딸을 둔 홀아비의 딜레마
 
회사의 중견간부로 일하는 초로의 신사 히라야마(류 치슈). 일찍이 아내를 여읜 그는 큰딸 미치코(이와시타 시마), 작은아들 카즈오(미카미 신이치로)와 함께 그럭저럭 살아간다. 장남인 코이치(사다 케이지)는 결혼하여 따로 나가 살고 있다. 장남 부부는 아직 형편이 피지 않아 아이도 낳지 못한 채 서민아파트에서 평범하게 생활한다.
 
어느 날, 중학교 동창인 친구 카와이(나카무라 노부오)가 히라야마의 사무실을 방문한다. 친구는 선뜻 히라야마의 딸 미치코를 시집보낼 생각이 없냐며 혼처를 소개한다. 친구가 소개하는 남자는 의과대학 졸업생으로 지금은 대학에서 조교로 일하고 있는 인물이다. 미치코의 나이는 결혼적령기인 스물넷. 이제껏 딸을 시집보낼 생각은 해보지 않았던 히라야마는 딸이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 애라고만 여겨 친구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다.
 
히라야마는 중학교 동창 모임 건을 상의하기 위해 몇몇 친구들과 단골술집에서 만난다. 친구들은 상처 후 젊은 아내를 맞은 동창 호리에(키다 류우 지)의 이야기를 화제로 삼는다. 친구들은 젊은 아내와의 밤일은 어떠냐며 호리에를 놀려먹는다. 히라야마의 딸 미치코가 스물네 살인데, 호리에는 늦은 나이에 스물일곱 먹은 아내를 얻었으니 친구들의 짓궂은 농담이 끊일 리 없다.
 
아내가 없는 히라야마 집안의 살림은 온전히 미치코의 몫이다. 친구들과 모임을 마치고 돌아온 히라야마는 왠지 미안한 마음에 딸에게 결혼할 생각이 없느냐고 묻지만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미치코는 “시집 못가도 괜찮다.”고 답한다. 그녀는 자신이 떠나면 늙은 아버지와 어린 동생을 수발할 사람이 없다는 현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다.
 
며칠 뒤 열린 반창회. 졸업한 지 40년이 지난 친구들은 반갑게 술잔을 나눈다. 이날 모임에는 은사였던 쪽박선생(그의 별명이다/토노 에이지로)이 초대되어 자리를 함께한다. 학창시절 무섭기만 했던 선생님은 이제 나이 들어 초췌하고 시든 모습이다.
 
젊고 아리따웠던 은사의 딸 토모코(스기무라 하루코)를 기억하는 제자 한 명이 그녀의 소식을 묻는다. 그러자 술이 거나해진 쪽박선생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아내와 사별한 쪽박선생은 전쟁 이후 세상살이가 팍팍해져 딸을 제때 시집보내지 못하고 지금껏 자신의 곁에 두며 함께 늙어온 터.
 
선생은 손자를 보고 사는 제자들을 부러워하며 자신은 외로운 인생이라고 푸념한다. 신세를 한탄하던 선생은 말머리를 돌리려는 듯, 갯장어 요리를 들며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처음 먹어본다고 감탄한다. 제자들은 그런 은사를 애처로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히라야마와 카와이는 쪽박선생을 바래다준다. 선생은 딸과 함께 허름한 국숫집을 운영하며 생계를 잇고 있다. 세상사에 지친 듯, 피곤함이 뚝뚝 묻어나는 꺼칠한 얼굴로 일행을 맞는 선생의 딸 토모코는 몹시 난처한 기색이다.
 
선생은 술이 취해 해롱거리면서도(그의 술 취한 연기는 압권이다) 계속 술을 내오라고 딸을 채근한다. 술주정을 하다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고꾸라져 버리는 아버지의 모습에 딸은 눈물을 쏟는다. 히라야마는 정중히 술을 사양하고 돌아서 나온다. 젊고 예뻤던 토모코를 기억하는 히라야마로서는 아버지 곁에서 초라하게 나이 먹어버린 그녀의 모습에 착잡한 심경을 가누지 못한다.
 
히라야마와 카와이, 호리에 삼총사는 오늘도 단골술집에 모여 한잔 기울인다. 일전에 중매를 서려했던 카와이는 쪽박선생 이야기를 꺼내며 히라야마에게 “너도 그런 팔자가 될 수 있어.”라며 더 늦기 전에 미치코를 시집보내라고 채근한다. 한편 친구들은 곤궁해 보였던 쪽박선생을 돕기 위해 2만 엔의 성금을 모은다. 히라야마는 봉투를 들고 선생의 집으로 향한다.
 
손에 밀가루 반죽을 잔뜩 묻힌 쪽박선생이 반갑게 히라야마를 맞는다. 선생은 제자들의 호의를 극구 사양하지만 히라야마는 선생 모르게 돈 봉투를 가게에 남겨둔다. 그때 국수를 먹으러 들어오던 손님이 히라야마를 알아본다. 그는 히라야마가 해군 함장이던 시절 일등항해사로 복무했던 사카모토라는 사내. 반갑게 조우한 두 사람은 근처 바(Bar)로 자리를 옮긴다.
 
부하였던 사카모토도 딸을 시집보내 이젠 손자를 본 상황. 두 사람은 전쟁 후 서로의 고생담을 나눈다. 사카모토가 “일본이 패전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요?”라고 묻자 히라야마는 “진 것이 다행 아니었을까?”라고 답한다. 사카모토는 “그럴 수도 있겠군요. 더는 멍청한 인간들이 설쳐대지 않으니까요.”라고 응수한다. 군대 이야기를 듣고 있던 마담이 군가를 틀어준다. 술이 오른 사카모토는 군가에 맞춰 행진하며 추억에 빠진다. 히라야마도 잠시 추억에 잠기는데, 그는 이 집 마담이 죽은 아내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나중에 돈 봉투를 발견한 쪽박선생은 일일이 제자들을 찾아다니며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히라야마는 회사로 찾아온 선생과 함께 친구들을 단골술집으로 부른다.
 
이날도 술에 취한 선생은 예의 해롱거리며 신세타령을 늘어놓는다. “나는 외로워. 외로운 정도가 아니라 서러워. 결국 인생은 혼자야. 외톨이라고. 딸을 내 옆에서 시중이나 들게 만든 내 인생은 실패야 실패. 아내가 없다 보니 중매가 들어온 것도 무시해 버렸지. 그런데 인생엔 때가 있는 법이거든... ”술에 취해 흐느적거리던 선생은 그 자리에 뻗어버린다.
 
옆에 있던 카와이가 히라야마에게 또 한마디 한다. “너도 잘 생각해라. 미치코가 선생님 딸처럼 되면 어쩌려고 그래.” 하지만 히라야마는 한사코 부인한다. “아냐. 난 그렇게 안 돼. 미치코도 그럴 애가 아니야.” 히라야마는 애꿎은 술만 들이킨다.
 
부정은 했지만 히라야마의 마음도 결코 편치는 않다. 늦게 귀가한 히라야마는 다림질을 하고 있는 미치코의 모습을 보자니 마음이 더 무겁다. “너, 시집 안 갈 테냐?” “놀리세요?” “진심이다.” “취하셨군요.” “시집가거라.” “전 아직 시집갈 생각 없어요. 아버지도 저랑 같이 살고 싶어 했잖아요? 전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하지만 그래선 안 돼.” 히라야마는 진지하게 말하지만 딸은 아버지의 말을 일축한다. 자신이 시집가고 나면 아버지와 동생은 누가 살필까. 속 깊은 딸은 자신의 진심을 누르고 또 억누를 뿐이다.
 
이튿날, 히라야마는 장남 코이치의 집을 찾는다. 미치코의 결혼문제를 상의하기 위해서다. 미치코가 큰아들이 다니는 회사의 미우라(요시다 데루오)라는 청년에게 마음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히라야마는 아들을 통해 청년의 의중을 알아보도록 한다.
 
코이치는 미우라와 식사를 하면서 동생과 결혼할 생각이 없냐고 묻는다. 사실 미우라도 미치코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미우라는 언제인가 코이치로부터 “여동생은 아직 결혼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어 일찌감치 마음을 접었고 지금은 다른 아가씨와 교제하는 중이었다. “너무 아깝네요. 진작 얘기해 주시지.” 역시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인가. 버스를 놓친 히라야마와 코이치는 아쉬워한다.
 
“애비가 미안하다. 너무 늦게 결심해서.” 히라야마는 미우라 얘기를 미치코에게 전한다. 낙담한 미치코는 남몰래 눈물을 흘리지만 “괜찮다”는 말로 오히려 아버지를 위로한다. 그리고 아버지 친구 카와이 씨가 소개한 남자를 만나보기로 한다.
 
장면이 바뀌고, 모처럼 히라야마의 집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오늘은 미치코의 결혼식이 있는 날. 눈부시게 아름다운 신부는 눈물로 아버지에게 작별의 예를 올린다. 아버지와 동생을 두고  떠나는 그녀의 발길은 여전히 무겁지만 식구들은 들뜬 마음으로 식장으로 향한다.
 
그날 저녁. 다시 모인 삼총사는 지나온 인생들을 반추하며 각자의 소회를 풀어낸다. 자식 농사의 덧없음, 나이 먹는 것,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가 오간다. “이젠 자네 차례야, 재혼하라고.” “쪽박 선생이 그러지 않던가. 어차피 인생은 외톨이라고.” 친구들의 잔소리가 귓전에서 부서진다. 곱게 키운 귀한 딸을 시집보낸 히라야마에게 오늘은 너무나 외로운 저녁이다. 히라야마는 슬그머니 술자리를 빠져나온다.
 
취기가 채 가시지 않은 히라야마의 발길이 향한 곳은 일전에 사카모토란 사내와 함께 왔었던 바. 아내를 닮은 마담이 있다는 그 술집이다. 왠지 쓸쓸해 보이는 남자를 위해 마담이 군가를 틀지만 히라야마는 허무한 표정으로 덩그러니 놓인 술잔만 바라볼 뿐이다. 어디를 가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바를 나온 히라야마는 집을 향해 힘없는 발걸음을 내딛는다.
 
늦게 돌아온 집에는 큰아들 내외와 막내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다. 미치코는 잘 살 거라는 덕담 몇 마디를 나눈 뒤 큰아들 부부는 자신들의 아파트로 돌아간다. 작은아들도 이내 잠자리에 든다.
 
홀로 남겨진 히라야마의 입에서 “아, 외톨이가 되었군.”이라는 짧은 탄식이 새어나온다. 히라야마는 술기운에 군가를 흥얼거려 보지만 어떻게 해도 허전한 마음을 가눌 수가 없다. 미치코의 방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눈에 밟히는 순간 집안은 더욱 고요하고 쓸쓸하게만 느껴진다. 멍하니 미치코의 빈방을 바라보는 히라야마. 오늘따라 유난히 외로워 보이는 전등이 홀로 어둠을 밝히고 있는 부엌으로 들어온 히라야마는 주전자의 물을 따라 한 잔 마신다. 그리고는 힘없이 의자에 주저앉아 버린다.
 
홀로된다는 것은
 
영화는 딸을 시집보낸 아버지 히라야마의 쓸쓸한 모습을 비추면서 끝난다. 시종 밝고 유머러스한 장면을 연출해 왔던 영화는 대단원에 이르면서 말로 형언키 어려운 먹먹한 감정을 쏟아놓는다. 전등불 아래로 굽은 어깨를 들이밀고 주전자의 물을 따라 마시던 히라야마의 고독한 모습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쉽게 가시지 않는다.
 
제목은 ‘꽁치의 맛’이지만 영화 어디에도 꽁치를 먹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감독은 왜 ‘꽁치의 맛’이라는 제목을 달았을까. 우리가 가을에 전어를 떠올리는 것처럼 일본에서는 꽁치가 가을을 상징하는 생선이다. 굳이 유추하자면, 꽁치는 인생의 가을을 맞이한 아버지 히라야마와 제철(결혼적령기)을 맞은 딸 미치코를 상징하는 복합적 의미가 아닐까 싶다. 꽁치는 내장째 구워 조리하기 때문에 달지만 비릿하고 씁쓸한 맛을 풍긴다. 일본에서는 이것을  ‘어른의 맛’이라고 부른다. 단맛과 쓴맛이 공존하는 것이 딱 우리네 인생살이와 같다는 의미다.
 
▲오즈 야스지로. 1903년 12월 12일 태어나
딱 60살이 되던 1963년 12월 12일 운명했다.
어머니 옆에 묻혔으며 그의 묘비에는
‘없을 無’ 단 한 글자만이 새겨져 있다.
각자 살기 바쁘고 남의 처지는 돌아보지 못하는 게 요즘 세태다. 누군가의 입장이 돼 보지 않고서는 타인의 고통과 외로움을 공감하기 어렵다. 쪽박선생이 느꼈던 외로움과 고통을 히라야마는 딸을 시집보내고 쓸쓸히 남겨진 뒤에야 실감한다.
 
빈 술잔은 다시 채우면 그만이지만 공허한 삶은 어찌 채워야 할까. 그러나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남아야 하는 것이 인생 아닌가. 나이를 먹는다는 것, 홀로된다는 것은 분명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홀로된다는 것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내일의 해를 보려면 다시 용기 내어 일어나야 하고 눈을 비벼야 한다. 어차피 인생은 모순의 연속 아닌가.
 
 

silverinews 진고개 신사  news1@silver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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