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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100년, 인생100년 ㊶ -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 silverinews 진고개 신사
  • 승인 2019.10.01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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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100년, 인생100년 ㊶ -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 제작 : 1975년, 미국
  - 감독 : 밀로스 포먼
  - 배우 : 잭 니콜슨, 루이스 플래처 외
  - 필름 : 컬러
  - 상영시간 : 133분
  - 수상 : 아카데미 작품·감독·각본·남녀주연상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다는 것은 작품, 감독, 각본(색), 남우주연, 여우주연상 등 소위 '빅5(Big Five)상'을 한꺼번에 거머쥐는 경우를 말한다. 91년 아카데미 역사상 현재까지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영화는 단 세 편밖에 없다.
 
1929년 할리우드 루즈벨트 호텔에서 제1회 축제가 열린 이래 최초로 그랜드 슬램을 성취한 영화는 프랭크 카프라 감독의 ‘어느 날 밤 생긴 일(1934)’이다. 이 기록은 이후 42년간 유지되다 1976년 제48회 영화제에서 깨진다. 그 영화가 바로 밀로스 포먼 감독의 출세작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다. 그 뒤 1991년 조너선 드미 감독이 ‘양들의 침묵’으로 또 한 차례의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다.
 
아카데미 그랜드 슬램 달성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간접 증명할 만한 자료가 있다. 1959년 12개 부문에 후보를 올리고 11개의 상을 독식한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벤허’, 1940년 13개 부문 후보에 올랐던 빅터 플레밍 감독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도 그랜드 슬램과는 거리가 멀었다. 14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돼 잔뜩 기대를 부풀렸던 ‘타이타닉(1991)’과 ‘라라 랜드(2006)’도, 후보로 지명된 11개 부문에서 100% 수상이라는 쾌거를 올렸던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2003)’도 그랜드 슬램의 야망을 이루진 못했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는 1970년대의 기울어진 사회상을 풍자한 영화다. 개인의 자유를 전기치료 한방과 맞바꿔 버리는 어느 정신병원의 억압과 독선을 고발하는 이 작품은 아카데미 그랜드 슬램의 명성답게 뛰어난 작품성, 탄탄한 시나리오, 완벽한 연출, 배우들의 명품 연기가 환상적으로 조합된 당대 최고의 명작이라는 극찬을 받은 바 있다.
 
권력과 자본에 지배당하는 현대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축소시켜 옮겨 놓은 것 같은 미국의 어느 정신병원. 그곳은 권력과 억압의 상징인 한 수간호사에 의해 독단적으로 운영된다. 어느 날, 사회에서 몹쓸 짓을 지었지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줄 아는 한 죄수가 이곳에 이감되면서 외딴 섬만 같았던 병원의 분위기는 변화를 맞는다. 그로부터 촉발되는 두 사람의 정면대결. 영화는 두 인물의 대립을 통해 제도가 인간을 어떻게 재창조하는지, 지배와 독재라는 구조적 모순이 어떻게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둥지에 날아든 ‘루저’들의 영웅
 
미성년자 성폭행 등 비열한 범죄를 저지른 전과 5범의 문제인물 맥 머피(잭 니콜슨)가 오리건 주의 한 정신병원에 당도한다. 그는 교도소에서의 지겨운 강제노역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정신병자 행세를 하여 이곳 병원으로 옮겨진 것. 교도소의 서류에는 그가 호전적이며 불만투성이인데다 작업 중에는 항상 농땡이를 친다고 적혀있다. 이곳 병원장 스파비 박사는 맥의 상태에 대해 시간을 가지고 더 관찰해보기로 한다.
 
불량스럽고 장난기 넘치는 태도, 항상 껄렁하고 아무에게나 붙임성이 있는 맥은 하나같이 이상해 보이는 환자들 틈에서 금방 대장처럼 행동한다. 그가 배속된 병동 환자의 면모는 대충 이렇다. 정서불안과 심한 언어장애를 가진 빌리, 유아기적 분노에 자주 빠지는 체드윅, 망상장애환자 마티니, 지적이지만 의처증에 빠진 하딩, 분노조절이 안 돼 늘 호전적인 테버, 간질환자 프레드릭슨, 벙어리에 귀머거리인 인디언 브롬덴. 이들과 그 밖의 중증질환자가 뒤섞인 병동은 늘 소란스럽다.
 
맥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병원이 결코 교도소보다 편한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환자관리의 실권을 쥔 수간호사 랫체드(루이스 플레처)의 보이지 않는 횡포 때문이다. 냉소적이며 권위적인 랫체드는 겉으로는 친절한 듯, 온화한 미소를 띠지만 사실은 원칙과 질서라는 미명하에 환자의 자유와 권리를 극도로 제한하는 독재자 같은 인물이다.
 
랫체드는 치료를 위한 그룹토론을 할 때면 특정 환자에게 집요할 정도로 질문을 집중시켜 환자를 당황하게 만든다. 때문에 토론회는 늘 불편한 상황으로 마무리되곤 한다. 그런 부작용에도 랫체드는 자기만의 토론방식을 고수한다. 소위 매뉴얼이라는 미명하에. 그러나 맥은 랫체드의 그 같은 행동이 의도적으로 환자를 학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맥은 암울한 병동 안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운동시간에는 인디언 추장이라고 불리는 2m의 거한 브롬덴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농구를 가르친다. 추장은 멀뚱거릴 뿐 별반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추장은 귀머거리”라는 동료들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맥은 열심히 농구를 가르친다. 랫체드는 맥의 그런 행동을 주목하며 매의 눈으로 항상 그를 감시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맥과 랫체드는 사사건건 부딪힌다. 늘 일률적으로 들려주는 클래식의 볼륨을 낮춰달라는 맥의 요구를 랫체드는 “모두를 위한 음악”이라는 말로 일축하고, 맥이 약 처방을 거부하면 더 강제적인 방법을 쓸 수도 있다고 협박한다. 맥은 월드시리즈 야구를 TV로 시청할 수 있게 일과표를 바꿔줄 것도 요구한다. 랫체드는 “신중하게 짜놓은 일과표를 변경하는 것은 원칙을 깨는 일”이라며 차라리 거수투표를 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랫체드가 빤히 지켜보고 있어 환자들은 쉽게 찬성의사를 드러내지 못한다.
 
조금의 자유도 허락되지 않는 병동의 일과에 염증을 느낀 맥은 시내에 나가 월드시리즈를 보겠다고 허풍을 떤다. 말더듬이 빌리가 “이곳에서 나갈 방법은 없다”고 하자 맥은 방 한가운데 놓인 대리석 급수대를 가리키며 “저걸 뽑아 문을 부순 뒤 나갈 것”이라고 큰소리친다. 급수대를 뽑느냐, 못 뽑느냐를 두고 내기가 벌어진다. 맥은 있는 힘을 다해 급수대를 바닥에서 뽑아내려 하지만 단단히 고정된 급수대는 옴짝달싹 않는다. 그러자 맥은 “어쨌든 시도는 해봤어. 최소한 노력은 했잖아!”라는 말을 내뱉으며 방을 나가버린다.
 
맥의 그런 행동이 있은 후 병동의 기류는 조금씩 변화의 조짐을 보인다. 환자 일부는 그룹상담 치료에서 하기 싫은 대답을 강요하는 랫체드에게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기도 하고 야구시청에 관한 찬반투표를 다시 치를 것을 주장한다. 이번에는 환자의 과반이 넘는 9명이 찬성한다. 그러나 랫체드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수의 의사를 묵살해 버린다.
 
반발심이 생긴 맥은 꺼진 TV 수상기 앞에서 자신의 목소리로 마치 야구중계를 하듯 아나운서 흉내를 낸다. “피처, 사인을 받았습니다.” “쳤습니다!” 그의 익살스러운 중계흉내에 병동의 반응은 뜨겁게 달아오른다. 반면 보란 듯이 어긋나가는 맥과 그를 따르는 환자들의 행동을 바라보는 랫체드의 얼굴은 싸늘하게 굳어만 간다.
 
다음날, 맥은 한술 더 떠 “진짜 미친놈이 어떤 건지 보여주겠다!”며 환자외출용 버스를 훔쳐 타고 병동 식구들과 바닷가로 향한다. 환자들은 모처럼 자유로운 분위기를 맞보며 즐거워한다. “너희들은 더이상 머저리가 아니야!” 맥은 동료들이 스스로 배를 몰고 낚시를 할 수 있도록 용기와 자신감을 불어넣는다. 탈주자들을 찾느라고 헬기가 동원되는 등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지만 맥 일행은 큼지막한 물고기 두 마리를 잡아 항구로 돌아온다.
 
추잉검이나 질겅거리며 늘 불손한 태도로 사고를 치는 맥. 의사들은 그가 미친 것이 아니라 위험한 인물일 뿐이라는 소견과 그에게 병적인 요소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는 엇갈린 진단을 내린다. 병원장은 그런 맥을 교도소로 돌려보내려 한다. 그러나 랫체드는 “그를 돌려보내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는 교활한 말로써 맥을 병원에 더 잡아둔다.
 
맥은 출소를 앞두고 있지만 자신이 제때 병원에서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다. 환자의 퇴원 시점은 관리자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마음대로 변경될 수 있으며 특히 랫체드의 눈에서 벗어나면 영원히 병원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맥은 경악한다. 그러나 맥의 반항심은 여전히 수그러들 줄 모른다.
 
담배 배급을 중지한 랫체드의 조치에 환자들이 대드는 일이 발생한다. 담배를 걸고 도박을 하는 것 때문에 배급을 중지했다는 랫체드의 말에 격분한 맥은 유리를 깨며 소란을 피운다. 경비원이 맥에게 폭력을 행사하자 늘 우직하게 자리를 지키던 인디언 추장이 나서 경비원을 제압한다. 결국 맥과 체드윅, 인디언 추장은 소동을 일으킨 벌로 엄청난 고통이 수반되는 고압 전기충격 치료를 받는다. 그런데 맥은 치료실에서 인디언 추장이 그동안 거짓으로 벙어리와 귀머거리 행세를 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오랜 시간 감쪽같이 사람들을 속여 온 인디언 추장의 재주에 감탄한 맥은 그에게 함께 병원을 탈출할 것을 제안한다.
 
드디어 맥이 병원을 탈출하기로 마음먹은 날. 맥은 사회에서 알고 지낸 콜걸 캔디와 로즈에게 자동차와 술을 준비시켜 병원으로 부른다. 야간 경비원을 돈과 여자로 매수한 맥은 인디언 추장에게 함께 도망치자고 권하지만 마음이 약한 추장은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주저앉는다. 때는 마침 성탄 전야. 맥은 탈출하기 전 병동 식구들과 실컷 한 번 놀아보기로 한다.
 
병원은 일순간에 술과 음악, 춤이 난무하는 통제 불능의 카니발 축제로 돌변한다. 술에 취한 환자들은 여기저기 널브러지고 병원의 기물은 엉망진창으로 망가진다. 맥은 그동안 정을 나눴던 친구들과 일일이 악수를 한다. 친구들은 맥을 그들의 지도자처럼 따르지만 그를 따라나설 용기까지는 보여주지 못한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한다. 맥이 떠나려던 순간, 말더듬이 빌리가 캔디에게 호감을 보이며 섹스를 원하는 눈치를 보인다. 더는 지체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동정심이 발동한 맥은 빌리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한다.
 
이튿날 아침. 난장판이 된 병원은 발칵 뒤집힌다. 빌리가 사랑을 나누는 사이 그만 술이 취한 맥은 병동 식구들과 함께 복도에 쓰러져 잠이 들어 버렸다. 빌리와 캔디는 벌거벗은 채 침대에 누워있다 경비원과 간호사에게 적발된다. 눈이 돌아간 랫체드는 빌리에게 소란을 일으킨 주동자의 이름을 대라며 윽박지른다.
 
일찍이 그녀의 강압적 태도에 트라우마를 갖고 있던 빌리는 공포에 떨며 맥을 지목한다. 맥은 창문을 열고 달아나려 하지만 경비에게 저지당한다. 그때 겁에 질린 데다 양심의 가책마저 느낀 빌리는 깨진 유리로 자신의 목을 찔러 자살한다. 빌리는 절명하고, 분노한 맥은 랫체드를 죽이려고 있는 힘껏 그녀의 목을  조르지만 경비원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한다.
 
다음날. 소동이 정리된 병원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잔잔한 클래식 선율 아래 하루를 시작한다. 목에 깁스를 한 랫체드는 미소를 띤 얼굴로 환자를 대하고 병동 환자들 또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전과 다름없는 표정으로 일과를 맞지만 맥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모두가 잠든 그날 밤, 완전히 흐느적거릴 정도로 심하게 몸이 망가진 맥이 경비원들에게 이끌려 병실로 돌아온다.
 
기척에 잠을 깬 추장은 어둠 속에서 맥에게 다가가 마음에 담아둔 얘기를 꺼낸다. “이젠 같이 가자. 나도 자신감이 산처럼 커졌어.” 그러나 대꾸 없는 맥. 그런 맥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던 추장은 소스라치게 놀란다. 맥의 앞이마 두 곳에 생긴 커다란 흉터. 그것은 뇌 일부를 제거하여 사람을 식물처럼 온순하게 만든다는 전두엽절제술의 뚜렷한 흔적이었다.
 
추장은 맥을 일으켜 앉히지만 맥은 고개조차 가누지 못한다. 완전히 풀려버린 그의 눈동자는 초점이 없다. 산송장이 돼버린 맥을 가만히 끌어안은 추장은 “너를 이대로 두고 갈 수는 없어. 나랑 같이 가자”고 나직이 속삭인다. 그리고 베개로 맥의 얼굴을 덮은 뒤 누른다. 고통스런 발버둥도 잠시. 맥은 추장의 품 안에서 숨을 거둔다.
 
추장은 맥이 그랬던 것처럼 급수대를 붙들고 힘을 쏟는다. 거한의 용틀임을 버티지 못한 급수대는 우두둑 소리와 함께 뽑혀 나온다. 추장은 급수대로 병동의 철창을 부수고 밖으로 나온다.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희뿌연 새벽. 추장은 먼동이 트는 곳을 향해 달려나간다.
 
권리를 행사할 줄 아는 것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전술한 대로 1970년대 미국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신랄하게 풍자한 영화다. 켄 케시의 1962년 소설이 원작이긴 하지만 영화는 소설 이상의 파급력을 보여줬다. 영화 상영을 계기로 그때까지 미국 내에 만연하던 정신병원의 인권침해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그 결과 연방정부 차원에서의 입원 및 치료제도 개선, 특히 전두엽 절제와 같은 위험하고 비인간적인 수술을 약물요법으로 대체하는 법안이 마련되는 등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 한 편의 영화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작은 씨앗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흥분되는 일인가.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둡고 암울한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하지만 비극적인 결말에 이르기 전까지는 상당히 유쾌하고 즐거운 장면도 많이 보여준다. 그 중심에는 맥 머피가 있다. 그는 정해진 일과대로만 움직여야 하고 조금의 일탈도 허용하지 않는 병원의 폐쇄성을 조롱하고 때론 그들의 규율을 통쾌하게 짓뭉개며 야유한다. 그는 어미 새가 새끼에게 날개 펴는 방법을 가르치듯 동료들에게 ‘권리가 있는 것을 아는 것’과, 그것을 ‘행사할 줄 아는 것’의 차이가 무엇인지 실천적으로 보여준다.
 
영화를 떠받드는 투톱 잭 니콜슨과 루이스 플래처의 연기는 환상적이다. 맥 머피를 연기하기 위해 태어난 배우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잭 니콜슨을 가리켜 어떤 평자는 ‘이 영화로 자기 인생의 대본을 제대로 쓴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루이스 플래처가 연기한 랫체드는 자신이 악하다는 것은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 사람들을 돕고 있다고 착각하는 반사회적 인물이다. 루이스 플래처의 악녀 연기가 얼마나 실감났는지 ‘랫체드 캐릭터’는 AFI가 선정한 역대 미국영화 악당캐릭터 5위에 올라있다.
 
그 밖에 정신병을 앓는 환자들로 출연한 조연들의 활약도 기막히다. ‘빙의’된 게 아니라면 어떻게 저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감탄사를 부르는 그들의 연기는 출연 배우가 실제 정신병자가 아닌지 착각이 들게 할 만큼 사실적이다.
 
미국에서 ‘뻐꾸기(Cuckoo)'는 정신이상자를 일컫는 속어로 쓰인다. 그러니까 ‘뻐꾸기 둥지(Cuckoo's Nest)'라면 정신병자들이 모여 있는 장소, 즉 정신병원을 의미한다.
 
인터넷을 뒤적이는데 이런 기사가 눈에 띄었다. [정신병원에 입소한 우리나라 중증·정신장애인의 67%는 비자발적으로 입소하고 있다. 10년 이상 장기 입소비율은 65%이며 이들의 사생활은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을뿐더러 다양한 삶의 기회와 선택권도 주어지지 않고 있다.] 로그아웃과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2019년 대한민국은 어느 지점에 머물고 있는가. 과연 우리의 ‘뻐꾸기 둥지’는 안전한가.
 
이 영화는 실제로 오리건주에 있는 정신병원에서 촬영했다. 그렇지만 이것은 정신병원에 대한 영화가 아닌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영화다.
 
 
▲ 덧붙이기 -------------------------------------------------------------
 
* 2003년 미국영화연구소(AFI)는 미국 영화 100주년을 맞아 당시까지 미국영화에 나온 배역 중 50명의 영웅과 50명의 악당 캐릭터를 선정했다. 지면 관계상 각 부문 5위까지만 적는다.
 
〈악당 캐릭터〉 1위: 한니발 렉터(양들의 침묵) 2위: 노먼 베이츠(사이코) 3위: 다스베이더(스타워즈, 1980) 4위: 서쪽 마녀(오즈의 마법사, 1939) 5위: 랫체드 간호사(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영웅캐릭터〉 1위: 에티커스 핀치 변호사(앵무새 죽이기, 1962) 2위: 인디아나 존스(레이더스, 1981) 3위: 제임스 본드(007 살인번호, 1961) 4위: 릭 블레인(카사블랑카, 1942) 5위: 윌 케인 보안관(하이 눈,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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