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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100년, 인생100년 ㊹ - 욜
  • silverinews 진고개 신사
  • 승인 2019.11.01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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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100년, 인생100년 ㊹ - 욜
 
 
  - 제작 : 1982년, 터키·스위스·프랑스
  - 감독 : 일마즈 귀니, 세리프 괴렌
  - 배우 : 타릭 아칸, 할릴 에르군 외
  - 필름 : 컬러
  - 상영시간 : 113분
  - 수상 :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1982년. 세계 영화의 변방에 머물러 있던 터키에서 주목할 만한 영화 한 편이 나온다. ‘욜(Yol)'이다.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군사정권 하에서 고통받는 민중의 삶을 그린 ’욜‘은 터키 영화 역사상 최초로 칸 영화제의 그랑프리를 수상한 작품이다.
 
이 영화가 나올 무렵 우리도 전두환 군사정권의 서슬 퍼런 통치 아래 있었다. 국민을 바보로 만들려는 3S(스포츠, 스크린, 섹스)정책에 따라 극장에는 매춘 에로물이 넘쳐나던 때다. 민중의 고된 삶을 위로하는 한 병의 수액 같은 영화를 기대하기 어렵던 시절, ’욜‘의 칸 제패 뉴스는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던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던진 사건이었다.
 
‘욜’은 마치 첩보작전을 방불케 하는 은밀한 제작 비화(秘話)로 더 유명해진 작품이다. ‘욜’은 군사정권에 맞서던 반체제 영화인 일마즈 귀니가 옥중에서 각본을 쓰고 바깥세상의 동료에게 일일이 지시를 내려 만든 영화다. 그래서 오프닝 자막에 두 명의 감독 이름이 올라간다. (a film by)일마즈 귀니와 (directed by)세리프 괴렌이 그들이다.
 
‘욜’은 터키어로 ‘여정’, ‘길’이라는 뜻이다. 며칠의 가출옥 허가를 받아 고향을 찾는 다섯 죄수의 일상을 따라가는 ‘욜’은 제목처럼 한편의 로드무비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다섯 남자가 보여주는 여정은 길 위의 일상을 담은 단순한 로드무비로 끝나진 않는다.
 
가출옥 다섯 죄수의 행로
 
1980년 터키 서북부.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마르마라 해의 이무랄리 교도소. 군부의 쿠데타로 계엄령이 선포된 엄혹한 시기의 교도소는 그 환경이 열악하기 이를 데 없다. 중노동과 교정당국의 비인도적 처사로 고통받는 와중에도 죄수들은 곧 발표될 가출옥자 명단에 자신들의 이름이 포함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가출옥이 허가돼 일주일간 귀향허가를 받은 다섯 명의 죄수가 교도소를 벗어나 각자 집으로 향한다. 살인죄로 수감된 유서프(툰케이 액카)는 키우던 카나리아를 아내에게 선물하기 위해 새장을 들고 감옥을 나선다. 그러나 그는 안타깝게도 길 위에서 가출옥 허가증을 분실한다. 집에 도착도 하기 전 검문소에서 걸러진 유서프는 독방에 갇히는 불운을 맞는다.
 
메흐메트 살리(할릴 에르군)는 아내 에미네와 두 아이를 만나러 디야르바키르로 향한다. 메흐메트는 먹고 살기가 힘들어 큰처남 아자르와 함께 보석상을 턴 일이 있었다. 그런데 경찰이 출동하자 겁이 난 메흐메트는 처남을 구할 생각을 하지 않고 혼자 달아난다. 그 때문에 처남은 경찰의 총에 죽는다. 그 일 이후 처가에서는 메흐메트를 사위로 인정하지 않는다. 메흐메트가 감옥에 간 후 아내와 아이들은 디야르바키르의 처가로 옮겨간다. 에미네는 남편과 부모·형제 중 한쪽을 선택하라는 가족들의 압박에 직면한다.
 
남편이자 아이들의 아버지인 메흐메트를 포기할 수 없는 에미네. 그녀는 몰래 두 아이를 데리고 집을 빠져나와 남편과 함께 열차에 오른다. 부부는 앞으로의 행복한 삶을 꿈꾼다. 그런데 헤어져 있는 동안 성적 갈증을 느껴온 부부는 그만 열차 화장실에서 성행위를 하다 적발된다. 이상한 낌새에 벌떼처럼 몰려든 사람들은 문을 두드리고 소리치며 난리친다. ‘부끄러운 줄 알라’ ‘상스러운 것들’이라는 욕이 난무하는 가운데 끌려 나온 부부는 매를 맞으며 인민재판에 가까운 수모를 당한다.
 
공공장소 음란죄로 처벌될 위기에 놓인 부부는 애처롭게 우는 아이들을 불쌍히 여긴 여객전무의 자비로 선처된다. 그러나 메흐메트의 여행은 거기서 끝난다. 메흐메트는 부부의 뒤를 쫓아온 작은 처남 세페르의 총을 맞고 열차 안에서 죽는다. 가족을 배신한 에미네 또한 비정한 동생의 총에 목숨을 잃는다.
 
쿠르드인으로서 시리아 접경의 고향마을 우르파로 돌아온 오메르(네크메틴 코바노그루). 그는 귀향휴가가 끝나도 교도소엔 돌아가지 않을 작정이다. 유채꽃이 만발한 초원 위에서 형과 함께 말을 타던 고향. 평화롭던 마을은 이제 쿠르드 반군과 정부군 사이의 피 튀기는 전투로 하루가 시작되고 해가 저문다. 아낙네와 아이들의 울음소리도 그칠 날이 없다.
 
오메르가 감옥에 있는 동안 그의 형은 게릴라로 투신했다. 아내와 자식을 두고 싸움터로 나간 형의 생사는 알 길이 없다. 오메르는 어릴 때부터 보아왔으며 이제는 성숙한 여인의 향기를 풍기는 쿨바하르(셈라 우카르)에게 호감을 가진다. 그러나 아내를 언제 과부로 만들어 버릴지 알 수 없는 불안한 시국에서 오메르는 쉽게 결혼할 생각을 갖지 못한다.
 
마을에는 오늘밤도 조명탄이 불타오르고 총소리가 요란하다. 다음 날 아침. 정부군은 간밤에 사살한 반군의 시신을 가져와 신원을 파악한다.
 
보복이 두려운 주민들은 가족의 시신 앞에서 함부로 내색을 하지 못한다. 오메르도 시체들 속에 섞여있는 형의 주검을 보고도 아는 척을 하지 못한다.
 
형이 죽자 쿠르드족 관습에 따라 오메르는 형수를 아내로 맞아들인다. 오메르는 마음에 둔 여인 쿨바하르 때문에 괴롭다. 쿨바하르 역시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남몰래 눈물 짓는다. 자신의 의지대로 살 수 없게 된 오메르는 형이 걸어간 길을 따르려 한다. 교도소 귀환을 하루 앞둔 날. 오메르는 마을 청년들과 함께 시리아 국경을 향해 말을 몬다.
 
또 다른 죄수 메브르트(히크메트 셀릭)는 약혼녀와 재회한다. 대도시에서 비교적 여유로운 생활을 하는 메브르트이지만 주위의 따가운 눈총은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메브르트는 가는 곳마다 찰거머리처럼 따라붙어 감시하는 친척과 친구들 때문에 고통받는다. 약혼녀와 식당에도 마음대로 갈 수 없다. 체면과 위신을 중시하는 가풍, 금기 일색의 사회 분위기 안에서 연인들이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결혼할 사람도 마음대로 만날 수 없는 이상한 세상. 알고 보면 메브르트 자신도 남성 권위주의에 사로잡혀 여자를 구속했던 인물이지만 정작 자신을 옥죄는 경직된 사회에는 심한 거부감을 느낀다. 의욕을 상실한 메브르트는 결국 매음굴을 찾는다. 그리고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창녀에게 몸을 던져버린다.
 
밤을 달려 고향에 도착한 세이트 알리(타릭 아칸)를 맞아주는 사람은 병석의 어머니뿐이다. 늙은 아버지의 후처로 들어와 세이트의 동생까지 낳았다는 새엄마도 한집에서 살고 있다. 세이트는 아내인 지네(세리프 세제르)가 집을 나가버린 사실을 알게 된다. 절망과 배신감에 몸을 떨며 세이트는 산자크 행 열차에 몸을 싣는다.
 
아내의 집은 산자크에서도 눈 덮인 설산을 하나 더 넘어야 도착할 수 있는 오지 중의 오지. 많은 눈과 추위 때문에 길손들이 종종 얼어 죽을 만큼 악명 높은 곳이다. 세이트는 말을 앞세워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헤쳐 나가지만 혹독한 추위와 거센 눈보라를 이기지 못한 말은 중도에 쓰러져 버린다. 총을 쏴서 말을 안락사 시킨 세이트는 끝이 보이지 않는 대 설원을 가로지른 끝에 꽁꽁 얼어붙은 몸으로 간신히 목적지에 도착한다.
 
생계 때문에 몸을 팔던 지네는 오빠의 손에 의해 잡혀왔다. 세이트의 장인은 그런 딸을 8개월째 쇠사슬에 묶어두고 마른 빵과 물만 먹이며 벌하고 있다. 그는 가문의 명예를 위해 딸이 죽음으로 죄를 씻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인은 세이트가 이슬람율법에 입각한 ‘명예살인’으로 딸을 단죄해 주리라 기대한다.
 
세이트도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고 신의 처분에 따라 아내를 벌할 심산이다. 세이트는 자신이 걸어온 눈 덮인 산길을 아내에게 걷도록 할 것이고, 허름한 옷을 걸친 아내는 얼마 못 가서 얼어 죽을 것이다. 피 한 방울 손에 묻히지 않는 단죄. 이것이야말로 신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진정한 명예살인의 한 방법이다.
 
살갗이 찢겨 나갈 만큼 매서운 바람이 휘몰아치던 저녁. 세이트는 아들, 아내와 함께 길을 나선다. 예정된 운명을 알면서도 지네는 말없이 따라나선다.
 
세 사람의 모습이 작은 점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설원은 광활하다. 얇은 옷과 망토 하나로 몸을 감싼 지네는 남편과 아들의 뒤를 밟으며 눈밭을 헤친다. 얼마나 걸었을까. 일행은 세이트가 타고 왔던 말의 시체가 쓰러져 있는 지점에 다다른다. 죽은 뒤 늑대 밥이 되어 참혹하게 찢겨 나간 말의 사체를 보자 지네는 극도의 공포감에 빠져 그만 주저앉고 만다.
 
긴 시간의 행군으로 온몸이 얼어붙어 더는 한 발자국도 뗄 수 없게 된 지네는 힘을 달라고 신께 기도한다. 그러나 그녀의 간절한 외침은 설원을 스치는 바람에 묻혀버린다. 무심한 남편과 아들의 모습은 이미 시야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다리의 감각이 무뎌진 지네는 극도의 추위와 엄습하는 공포로 덜덜 떨며 절규하듯 남편을 부른다.
 
어린 아들의 간절한 눈빛에 감정이 동요된 세이트는 아내가 있는 곳으로 돌아온다. 아내가 지쳐서 죽기를 바랐지만 마음이 흔들린 세이트는 차마 어쩌지 못하고 아내를 업어 산을 내려간다. 그러나 힘을 잃은 아내의 몸뚱이는 얼마 가지 못해 눈밭으로 나동그라진다. 뻣뻣하게 굳어 죽어가는 아내를 보자 세이트는 비로소 자신의 행동을 뉘우친다. 절대 잠들어선 안 된다며 아내의 뺨을 때리기 시작하는 세이트. 꽁꽁 언 아내를 들쳐 맨 세이트는 마을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마을에 도착한 아내는 결국 숨을 거둔다. 가출옥의 시간을 모두 보내버린 세이트는 아들과의 짧은 이별을 뒤로하고 허망하게 교도소로 돌아간다. 열차에 올라 초점 없는 시선으로 창밖을 바라보던 세이트에게 ‘늑대의 먹이만은 되지 않게 해 달라’며 애원하던 아내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온다. 세이트는 차창에 머리를 파묻었다. 굵은 눈물이 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세상 도처가 감옥이다
 
간절했던 가출옥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가는 죄수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무너진 고향의 비루함과 속박과 억압, 갈등과 분열로 신음하는 암흑 같은 현실뿐이다. 안타깝지만 영화 속에 비친 터키는 마치 꿈과 희망이 인수분해 되어 사라진 세상처럼 절망적이다.
 
전통의 이름 아래 용납되는 뿌리 깊은 악습과 편협한 종교적 사고. 가부장제의 폐해와 빈곤, 유혈충돌, 민족주의, 권위와 제도 앞에 무기력하게 노출돼 차별받고 방치된 여성과 아이에 이르기까지 저개발의 수렁에서 허우적거리는 터키의 현실은 너무나 처연하다.
 
난민촌을 방불케 하는 열악한 주거.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빠는 어린애들. 열차 간에서 애정행각을 하다 멱살이 잡혀 끌려 나오는 부부. ‘내가 이제 형수의 남편이 되었다’는 말로 형의 죽음을 알려야 하는 시동생.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도 마음대로 만나지 못하게 하는 꽉 닫힌 사회. 아들 앞에서 아내의 죽음을 강요하는 비정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세상은 어느새 거대한 감옥으로 변해버린다.
 
‘욜’의 영상은 대체로 다큐멘터리의 ‘날 것’을 연상시키듯 거칠고 투박하다. 네오레알리즘을 떠올리는 고달픈 영상은 관객의 감정선을 건드리기에 충분하다. 반면 오메르와 세이트의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초원과 설산의 영상은 거대한 자연과 절대자에 대한 존경의 신념을 담은 듯 경건하여 한 작품 안에서도 서로 다른 느낌을 준다. 광활한 대지의 아우라, 영혼을 깨우는 몽환의 사운드가 결합된 이 장면들은 서정미와 비장감이 뒤섞여 마치 한편의 명상필름을 마주하는 기분이 들게 한다.
 
일마즈 귀니의 영화 같은 삶
 
1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액션스타로 사랑받았던 일마즈 귀니(1937~1984)는 1960년 반체제운동으로 투옥된다. 영화배우로서의 커리어에 심각한 타격을 입고 2년 뒤 출감한 그는 1970년 다시 투옥된다. 이때는 영화감독으로 입문한 뒤였다. 불온서적 저술이나 수배자 은닉 등의 불경죄로 끊임없이 군사정권의 탄압을 받은 귀니는 1974년에는 우익 검사 살해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8년형을 언도받게 된다.
 
쿠르드인 출신으로 이무랄리 교도소에 수감된 귀니는 옥중에서 ‘욜’의 시나리오를 쓴다. 자신의 수형생활을 바탕으로 작성한 이 시나리오는 외부에 있던 조감독 세리프 괴렌에게 남몰래 전달된다. 이 시나리오와 중간중간 귀니가 수정 보완해 내보낸 콘티에 따라 세리프 괴렌은 1979년 촬영을 시작한다.
 
영화는 우여곡절 끝에 완성됐지만 엄격한 검열과정을 거치면서 귀니가 연루된 사실이 곧 밝혀진다. 그의 이력 때문에 영화는 당연히 상영을 허락받지 못한다. 그러자 귀니는 가출옥 중이던 1981년 ‘욜’의 네거티브 필름을 들고 스위스로 도망친다. 자유의 몸이 된 귀니는 편집을 완료하고 영화를 개봉한다.
 
1982년 귀니는 칸의 부름을 받는다. 기술의 완성도를 떠나 영화를 향한 집념과 열린 세상을 지향한 그의 저항정신에 칸이 화답한 것이다. 터키 정부는 칸 시상식에 체포조를 보내는 등 끝까지 그를 탄압하려했지만 타협이 없는 열정으로 민주화에 헌신한 그의 예술혼을 억누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투옥 중에만 4편의 영화를 원격 제작할 만큼 영화에 대한 정열이 흘러넘쳤던 귀니. 총 20여 편의 감독 작품을 남긴 그는 1984년 지병인 암이 악화되어 망명지 프랑스 파리에서 숨을 거둔다. 47세의 젊은 나이였다. 국민감독으로 불린 그의 죽음을 터키 국민과 세계 영화인들이 깊이 애도했다. 좋은 세상에서 원하는 영화를 실컷 만들어보지 못하고 안타깝게 눈을 감은 귀니. 짧지만 강렬한 삶을 살다간 그는 쓰레기 더미에서 장미를 키워낸 시대의 장인이었다.
 
 

silverinews 진고개 신사  news1@silver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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