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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활 단상] 꿈꿀 권리
[나의 생활 단상] 꿈꿀 권리
 
 
김은주(주부)
어쩌다 보니 오거리가 내려다보이는 높은 집에 살 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라는 말 뒤의 사연은 우리 동네가 재개발에 들어가 이주하게 된 것이다. 이사 온 새집은 창밖으로 공원이 보이고 사계절을 볼 수 있으니 비밀스러운 꿈이 이루어졌다고 가만히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부모님이 지으신 빨간 이층집에 시집와서 4남 1녀 시동생들 출가 시키고 내 아이들 시집・장가보내고, 그렇게 오랜 세월을 살아온 집은 넓은 창 가득 하늘과 나무와 성벽이 보이는 집이었다. 시대의 흐름 따라 다세대주택 바람이 불고 한옥이던 앞집이 다세대주택으로 키를 키우자 갑자기 경치 좋은 창문이 막히는 일이 벌어졌다. 삼층이 된 앞집의 붉은 벽돌이 이층 우리 집 남향 전면을 완전히 가려 창밖은 눈이 오는지 비가 오는지 모르는 무표정한 벽이 되고 말았다. 그러자 나에게는 비밀스러운 꿈이 하나 생겼다. 어떤 사람에게는 별것도 아닐 그 꿈은 창이 있는 작은 방이었다. 그저 꿈일 뿐 이루어지기 요원한 꿈이었기에 마침 그때 읽고 있던 가스통 바슐라르의 ‘꿈꿀 권리’를 인용하여 ‘사계절이 보이는 창이 있는 작은 방’은 나에게 ‘꿈꿀 권리’가 되었다.
 
오랜 시간을 끌며 재개발을 추진하던 구역이 갑자기 이주 통보를 내려 부모님이 지으신 집을 아들이 헐고 나오는 새 역사를 썼다. 준비도 없이 황망한 중에 새 아파트를 지어 입주할 때까지 살아야 할 집은 열 평 남짓한 오피스텔이다. 남편은 옹색한 집이 마음에 들지 않아 불만이 많다. 게다가 서울 사대문을 크게 벗어났다는 이유로 좀처럼 정을 붙이지 못하니 미안하기 이를 데 없지만 생전 처음 남편의 의견을 거스르고 내 고집으로 이사하였다. 가전과 가구가 빌트인 되어 밥솥과 숟가락만 들고 가라기에 아끼던 가구와 살림을 모두 버리고 책 몇 권 그릇 몇 개 필요한 옷가지만을 추렸다. 그 와중에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버린 것, 빠뜨린 것들이 많아 둘러볼수록 추억과 기억과 보물까지 모두 버린 듯 망연하다.
 
작은 방의 풍경은 새벽 다섯 시 20분 동쪽 하늘이 밝아오며 붉은 해가 솟고 창은 마치 사각 프레임인 듯 원근의 빌딩과 아파트, 공원의 푸른 숲을 한 폭 그림으로 담는다. 비 오는 날 창은 물방울 화를 그리며 아련한 파스텔 톤의 수채화도 연출한다.
 
놀라운 창밖의 풍경 또 한 가지는 모이고 흩어지는 오거리 교통의 흐름이다. 정지선에서 다음 신호를 기다리던 차들이 신호에 따라 일제히 차체를 밀고 나아갈 때 어쩌면 우리네 인생길 같다고 생각한다. 여태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 뻔한 한 인간이, 흐르는 대로 운명에 순응하는 삶 같기도 하고, 사회의 한 축을 담당한 구성원이 내 몫의 규격에 맞춘 회전과도 같다. 동시 신호를 받은 차들이 제 갈 길로 갈라지는 밤 풍경은 마치 만개하는 꽃인 듯, 지휘자의 손끝에 따라 일제히 나아가는 오케스트라인 듯 감동을 자아낸다. 반복되는 교통의 흐름이 그들만의 언어로 이렇게 질서정연한 드라마를 연출하다니 높은 층과 넓은 창이 아니면 평생 모를 뻔한 호사를 누린다.
 
창 가득 들어오는 풍경에 덤으로 움직이는 오케스트라까지 뜻밖의 선물을 받았으니 ‘사계절이 보이는 창이 있는 작은 방’의 꿈을 완벽히 이루었다고 할까. 그런데 이왕 꾸는 꿈인데 왜 하필 ‘작은 방’이라는 못을 박았을까. ‘사계절이 보이는 창이 있는 넓은 방’이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바보같이.
 
 

silverinews 김은주  news1@silver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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