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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100년, 인생100년 ⑬ - 선셋대로
  • silverinews 진고개 신사
  • 승인 2018.12.2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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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100년, 인생100년 ⑬ - 선셋대로
 
 
 -  제작 : 1950년, 미국
 -  감독 : 빌리 와일더
 -  배우 : 글로리아 스완슨, 윌리엄 홀든, 에리히 폰 슈트로하임 외
 -  필름 : 흑백
 -  상영시간 : 110분
 -  특기사항 : 아카데미 각본, 음악, 미술상(총 11개부문 노미네이트)
             전미 비평가협회 작품, 여우주연상
 
 
 
 빌리 와일더의 영원한 걸작 ‘선셋대로(Sunset Boulevard)’는 여전히 꺼지지 않는 욕망에 빠져 현실을 망각한 채 혼자만의 세상에 갇혀 살아가는 늙은 여배우의 일그러진 초상을 잔인할 정도로 실감나게 표현한 영화다. 필름 누아르의 색채가 진한 ‘선셋대로’는 인간의 뒤틀린 집착과 망상이 빚어낸 광기와 파멸을, 나아가 영욕으로 점철된 할리우드의 빛과 그림자를 매우 차가운 시선으로 들여다본 화제작이다.
 
유성영화 ‘재즈싱어(1927)’의 출현은 영화계의 지각변동을 불러온 대사건이었다. ‘소리’의 출현이라는 새로운 물결에 적응하지 못한 무성영화 시대의 배우들 중 많은 수는 무대 저편으로 사라져야 했다. 무성영화 시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여배우에게 남의 목소리를 입혀 성공해 보려다 생기는 해프닝을 다룬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g In The Rain, 1952)’를 보더라도 당시 유성영화가 할리우드에 몰고 온 파장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선셋대로’는 무성영화의 대스타로 은막을 주름잡았던 한 여배우의 뒤틀린 욕망과 지나친 허영심이 부른 치정 살인극을 그린 영화다. 실제로 무성영화 시대에 절정의 인기를 누렸던 글로리아 스완슨이 이제는 퇴락하여 은둔의 삶을 사는 주인공 노마 데스몬드를 연기했다. 은퇴 후 20년 만에 이 영화로 은막에 복귀한 그녀는 마치 현실과 영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듯한 신들린 연기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광기어린 한 인간의 집착과 몰락
 
 LA에 있는 선셋대로(Sunset大路). 형사와 기자를 태운 차량이 살인사건을 신고받고 출동한다. 왕년의 여배우 중 한 명이 연루된 사건으로, 이 배우의 집 안에 있는 수영장에서 한 젊은 남자의 시신이 발견된 것. 등에 두 발, 복부에 한 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사내는 몇 편의 B급 영화 시나리오를 쓴 무명의 작가로 밝혀진다.
 
영화는 시간을 거슬러 그 사건의 시발점이 된 6개월 전으로 돌아간다. 나(죽은 남자), 조셉 길리스(윌리엄 홀든)는 생활고를 겪고 있는 신세다. 글이 안 팔려 고생하던 그 시기에 할부금융사 추심원이 차를 견인해 가겠다고 아파트로 들이닥친다. 1946년형 플리머스 컨버터블에 대한 할부금이 석 달째 밀려있기 때문이다. 나는 친구에게 차를 빌려주었다고 변명하고, 추심원은 내일까지 차를 가져다 놓으라고 경고한다. 사실 나는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미리 다른 곳에 차를 빼돌려 둔 상태다.
 
다급해진 나는 영화사의 제작자를 찾아가 돈을 빌리려 하지만 돈은 고사하고 교정 직원 베티(낸시 올슨)로부터 표절 느낌이 나는 진부한 글이라는 혹평만 듣는다. 시내로 돌아가기 위해 선셋대로로 차를 몰던 나는 할리우드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 순간, 나는 추심원에게 발각되어 백주 도심에서 영화 같은 추격전을 벌인다. 그리고 우연히 인적 드문 대저택으로 접어든 덕에 나는 간신히 추격자를 따돌린다.
 
내가 들어선 그 저택은 알고 보니 과거 무성영화계를 주름잡았던 노마 데스몬드(글로리아 스완슨)의 집이었다. 그녀는 시대가 변했음에도 아직도 자신이 최고의 배우라는 착각에 매몰돼 반미치광이 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녀의 곁에는 어두운 분위기의 맥스(에리히 폰 슈트로하임)라는 사나이가 늘 맴돌고 있다. 맥스 역시 무성영화계에서 인정받았던 감독 출신. 어린 노마를 발굴하여 스타로 키웠으며 한때는 그녀의 첫 남편이었다. 그는 노마의 파멸을 지켜볼 수 없어 자청해서 집사 일을 맡아보고 있다지만 가짜 팬레터를 작성하는 등 오히려 노마가 과거의 환영에서 깨어나지 못하도록 부추기는 인간이기도 하다.
 
나를 대면한 노마는 내 직업이 시나리오 작가라는 말에 관심을 보이며 자신이 썼다는 시나리오 ‘살로메’를 보여준다. 그녀는 이 시나리오를 영화화할 것이며 자신이 주연으로 출연할 예정이라고 밝힌다. 그러면서 나에게 시나리오 감수를 요청한다. 조악하기 그지없는 시나리오를 읽어 본 나는 주급 500달러는 받아야 한다고 튕기고, 노마는 돈 걱정 따윈 말라고 일축한다. 그녀는 나에게 침식과 관련한 일체의 편의제공도 약속한다. 일감이 없어 빈둥거리던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미끼를 물어준 노마에게 내심 고마움까지 느낀다.
 
곤궁한 처지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나는 2주 정도만 버텨보자는 심사로 차고 위 허름한 방에 머문다. 지금도 팬레터를 받는다고 자랑하는 노마는 팬들에게 나눠줄 사인을 늘 준비한다. 또 공단과 주름 천, 금박 입힌 보료로 공주 침실처럼 꾸민 자신의 방에 전성기 시절 찍은 사진들을 죽 늘어놓고 있다. 그녀는 자신이 출연했던 필름을 돌려보며 감탄을 연발하기도 한다. “너무 멋있지 않아요? 대사도 없고, 우린 말이 아닌 표정으로 충분했거든.” 몽유병 환자처럼 망상 속에 사는 그녀는 늘 그런 식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노마는 멋진 양복을 맞춰주는 등 나를 머리에서 발끝까지 최고급 명품들로 치장시키고 거처 역시 과거 그녀의 남편이 사용했던 방으로 옮겨준다. 나는 본관의 모든 방문마다 잠금장치가 없는 사실에 의문을 갖고 집사 맥스에게 이유를 묻는다. 맥스는 노마가 우울증에 시달려 자살을 기도한 사실이 있었고 그 이후 잠금장치를 모두 제거했다고 말한다.
 
늪으로 빠져드는 젊은 작가
 
 노마의 저택에서 송년파티가 열리는 날. 악사가 초청되고 홀에는 우아한 음악이 울려 퍼진다. 그러나 초대된 손님은 아무도 없다. 노마는 나에게 자신의 수십억 재산을 과시하며 함께 남은 인생을 즐기자고 말한다. 나는 노마의 입에서 ‘우리’라는 말이 나오자 화를 내고, 노마는 자신의 사랑을 거절하는 나의 뺨을 날린다. 불현듯 정상적인 사람들과 만나고 싶어진 나는 절친 아티 그린(잭 웹)의 집으로 향한다. 영화계에 종사하는 인물들이 다 모인 그곳은 송년 분위기로 활기가 넘친다. 잘 빼입은 나의 모습에 친구들은 놀라고, 나는 영화사 교정직원 베티를 다시 만난다. 친구 아티와 약혼한 사이인 베티는 나의 다른 좋은 작품들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며 이전과 달리 관심을 보인다.
 
저택으로 돌아오자 나를 기다리는 것은 두 팔을 칼로 그어 자살을 시도한 노마의 모습이다. 그녀는 자신의 사랑을 거부한 나에 대한 증오로 계속 부들거린다. 또다시 자해하지 않는다면 곁에 있어주겠다는 나의 말에 그녀는 화를 누그러뜨린다. 나를 끌어안는 노마. “자기야~.”라고 나직이 속삭이는 그녀의 음성을 듣는 순간 나는 이 감옥 같은 저택에서 벗어나야 할 시간이 되었음을 직감한다.
 
노마는 자신의 시나리오를 파라마운트사의 드밀 감독(세실 B. 드밀)에게 보낸다. 드밀은 노마의 열정과 용기를 알고 있기에 그 형편없는 시나리오를 놓고 뭐라 말해야 좋을지 고민한다. 드밀은 영화사를 찾은 노마에게 시간을 좀 더 갖자며 좋은 말로 구슬려 일단 돌려보낸다. 노마와 동행한 나는 영화사에서 베티를 만나게 되어 공동 대본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한편 드밀 감독의 말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한 노마는 본격적인 몸만들기에 들어간다. 영화 출연을 향한 그녀의 의지는 불굴의 투혼이 되어 활활 타오른다. 목의 잔주름 하나까지도 모두 없애려는 집념은 너무나 무서울 정도. 그 와중에도 노마는 나에 대한 끊임없는 감시와 질투의 눈초리를 보내며 자신을 챙겨줄 것을 요구한다. 그런 노마의 모습에 나는 질식한다. 그날부터 나는 밤이면 저택을 몰래 빠져나와 베티와 대본작업을 한다. 그리고 둘은 서서히 사랑의 감정에 빠져든다.
 
베티와 대본작업을 마치고 늦은 밤 돌아온 나는 또다시 질투로 이글거리는 노마를 마주한다. 노마는 베티에게 전화를 걸어 기둥서방처럼 살고 있는 내 처지를 까발리고, 베티는 노마의 집을 찾아와 직접 확인한다. 베티는 내게 짐을 챙겨 함께 나가자고 청하지만 나는 친구와의 관계를 생각해 그녀에게 이별을 고한다. 그 뒤 나는 이 냄새나는 생활을 청산하기로 결심한다. 짐을 싸는 나의 모습을 본 노마는 눈이 뒤집혀 물불가리지 못하고 권총을 꺼내든다. “관객들은 오래 전에 떠났다.”는 나의 말에 노마는 “그들은 아직도 날 원하고 있어, 난 최고의 스타야!”라며 강력 부인한다. 더 지체할 이유가 없어진 내가 밖으로 향하는 순간 분노한 노마는 권총의 방아쇠를 당긴다.
 
다시 영화는 나의 시신이 떠 있는 풀장으로 돌아온다. 경찰과 기자가 몰린 가운데 내 시신이 인양된다. 경찰의 추궁에도 노마는 일절 대꾸하지 않고 거울만 보며 딴청을 부린다. 그때 카메라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자 노마의 동공이 확대된다. 극장상영 뉴스를 촬영하는 카메라가 당도한 사실을 영화 찍으러 온 것으로 착각한 그녀는 맥스에게 “드밀 감독에게 곧 내려가겠다고 전하라.”고 말한다. 거실에 경찰과 기자들이 운집한 가운데 드디어 온갖 치장을 다 한 노마가 모습을 드러낸다. 기자들의 플래시가 터지자 노마의 표정은 더욱 상기된다. 집사 맥스는 자신이 감독인양 “카메라-액션!”을 외친다.
 
카메라가 서서히 돌아가는 가운데 노마는 몹시 거만한 모습으로 드레스를 휘날리며 연기에 빠져든다. 몰려든 사람들을 향해 장황한 말을 쏟아놓는 노마. “이렇게 다시 스튜디오에서 영화를 찍게 돼서 정말 행복해요. 다신 절대로 떠나지 않을게요. 이게 내 삶이랍니다.” 광기로 이글거리는 노마의 표정은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불타오르고, 절제할 수 없는 환희에 도취한 그녀는 카메라를 향해 소리친다. “됐어요. 감독님 이제 클로즈업을 찍어요.” 한껏 고개를 젖히고 느릿느릿 카메라로 향하는 노마의 섬뜩한 얼굴. 그러나 이내 모든 장면은 안개처럼 흐려지며 사그라지고 만다.
 
멈춘 시간 속에 갇힌 비극의 여인
 
 
 글로리아 스완슨(1899~1983)의 메소드 연기는 이 영화의 알파이며 오메가다. 그녀가 보여준 도착적이며 퇴폐적인 분위기, 특유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는 치명적 팜므파탈의 전형이 되었을 정도다. 그녀가 엔딩 장면에서 보여준 표정연기는 언어로 담아내기 불가능할 정도로 완벽했다. 그녀는 실제로 이 영화에 출연한 에리히 폰 슈트로하임(1885~1957)이나 세실 B. 드밀(1881~1959)같은 무성영화의 위대한 감독들조차 경배하는 대단한 스타였다. 1934년 이후 영화계에서 자취를 감추었다가 ‘선셋대로’로 복귀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까지 올랐으나 또다시 칩거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녀의 실생활은 영화처럼 어둡진 않았다. 그녀는 80이 넘은 나이에도 세계 각국을 돌며 건강강연을 했고 예술에도 조예가 깊어 조각전시회를 여는 등 활발하게 움직였다.
 
윌리엄 홀든(1918~1981)은 1950년대를 상징하는 미남배우이지만 ‘선셋대로’ 출연 당시만 해도 그리 화려한 배우는 아니었다. 이 영화 이후 일복이 터지기 시작한 그는 빌리 와일더 감독과 궁합이 잘 맞는 배우였다. 빌리 와일더의 ’제17 포로수용소(1953)’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고 ‘사브리나(1954)’에서도 호흡을 맞췄다. ‘콰이 강의 다리(1957)’ ‘모정(1955)’ ‘와일드번치(1969)’ ‘타워링(1974)’은 국내 올드팬들이 기억하는 그의 대표작들이다. 이 잘생긴 배우는 63세라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어이없는 죽음을 당했다. 1981년 11월 12일, 캘리포니아 주 산타모니카의 아파트에서 술에 취해 있던 윌리엄 홀든은 카펫을 밟다 미끄러져 그만 탁자 모서리에 이마를 찧었는데 이 사고가 과다출혈로 이어져 사망했다.
 
나치의 박해를 피해 1934년 미국으로 이민한 유대인 빌리 와일더(1906~2002)는 기자 출신으로 일찍이 각본 쓰는 능력이 출중했던 사람이다. 1942년 감독 데뷔이후 미다스의 손으로 불릴 만큼 그의 영화들은 흥행이 좋았고 상복도 많았다. 칸영화제 초대 그랑프리 수상작인 동시에 아카데미 감독, 각본상을 받은 ‘잃어버린 주말(1945)’과 느와르 장르 불후의 걸작으로 꼽히는 ‘이중배상(1944)’을 비롯해 ‘제17 포로수용소(1953)’ ‘사브리나(1954)’ ‘7년 만의 외출(1955)’ ‘뜨거운 것이 좋아(1957)’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1960)’ 등 히트작을 양산했다. 현대 사회의 공허함을 다룬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는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을 모두 휩쓸었으며, 이 영화는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최후의 흑백영화로 기록된다. ‘영화의 80%는 각본으로 완성된다.’던 그의 소신처럼 빌리 와일더는 자신이 감독한 영화들의 시나리오를 직접 쓴 경우가 많았다. ‘선셋대로’ 각본 역시 그와 작가 찰스 브래킷의 공동작품이다.
 
강렬한 라스트, 이 영화 최고의 장면
 
해소되지 않는 욕망으로 부글거리는 거리 ‘선셋대로’. 그러나 ‘선셋(Sunset)'은 ’일몰(日沒)‘이다. 감독은 그것을 한 시대의 몰락을 은유하는 단어로 여겨 제목으로 택하진 않았을까.
 
가히 엽기적이라 할 만한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 본다. 완전히 미쳐버린 노마 데스몬드는 ‘나를 클로즈업 하라.’고 대사한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이 카메라 한가득 채워지려는 찰나 화면은 신기루처럼 날아가 버린다. 이 장면은 기이할 정도로 자비로운 삶이 그녀에게 베푼 마지막 동정의 순간인 동시에 결코 되돌아오지 않을 시간, 저물어간 시간은 그것대로 묻어두라는 준엄한 메시지로 읽힌다. 놀라운 압축미가 보여주는 강렬한 라스트야말로 ‘선셋대로’ 최고 명장면이 아닐 수 없다.
 
 

silverinews 진고개 신사  news1@silver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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