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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100년, 인생100년 ⑪ - 동경이야기
  • silverinews 진고개 신사
  • 승인 2018.12.01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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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100년, 인생100년 ⑪ - 동경이야기
 
 
  - 제작 : 1953년, 일본
  - 감독 : 오즈 야스지로
  - 배우 : 류 치수, 히가시야마 치에코, 하라 세츠코, 
          스기무라 하루코 외
  - 필름 : 흑백
  - 상영시간 : 136분
  - 특기사항 : 2012 BFI 선정 세계 10대 영화 중 3위
              2012 세계 영화감독 358인이 뽑은 ‘최고의 영화’
 
 
 
 영국영화협회(BFI)가 발행하는 권위 있는 영화잡지 ‘사이트 앤 사운드(Sight & Sound)’는 지금까지 세계 각국에서 발표된 모든 영화를 놓고 10년 주기로 위대한 10대 영화를 선정한다. 가장 최근인 2012년 발표한 순위에 따르면 오즈 야스지로의 ‘동경이야기(東京物語;Tokyo Story)’가 알프레드 히치콕의 ‘현기증’, 오손 웰스의 ‘시민케인’에 이어 3위에 올랐다. 이 잡지는 또 전 세계 유명 영화감독 358명이 뽑은 최고의 영화 순위도 같이 발표했는데, 이 부문에서는 ‘동경이야기’가 1위를 차지했다.
 
극히 단순해 보이는 일본사회 소시민의 일상적 이야기를 놀라우리만치 차분하고 매우 건조한 화법으로 터치한 ‘동경이야기’가 이처럼 평단의 극찬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이 영화가 지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 때문일 것이다. 일본 가족사를 통해 전란 이후 황폐해진 일본인들의 각박한 삶을 말하는 ‘동경이야기’는 뿌리째 흔들려가는 전통적 가족공동체의 불편한 모습을 담담한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노부모의 방문을 부담스럽게 여기는 도회지 자식들과 그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서둘러 낙향하는 부모의 뒷모습이 씁쓸한 여운을 남기는 ‘동경이야기’는 동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게 하는 영화다.
 
도쿄로 간 노부부
 
 히라야마 슈키시(류 치슈)와 그의 아내 토미(히가시야마 치에코)는 2차 대전의 와중에서 5남매를 잘 키워낸 노부부. 둘은 초등학교 교사이며 미혼인 막내딸 쿄코(카가와 쿄코)와 함께 지금은 히로시마 현 오노미치 시의 한적한 어촌마을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 이웃들은 전쟁의 혼란한 틈에서도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운 두 부부를 부러워한다. 어느 날, 부부는 시간을 내어 도쿄에 살고 있는 큰아들과 큰딸을 찾아보기로 하고 여행 가방을 싼다.
 
장남 코이치(야마무라 소)는 의과대학을 나와 도쿄 변두리에서 작은 의원을 운영하고 있다. 히라야마 부부는 오랜 기차 여행 끝에 큰아들 집에 도착한다. 큰며느리는 부부의 잠자리를 위해 손자의 책상을 마루로 내놓는다. 그런 까닭에 어린 손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방문이 반갑지 않은 표정이다. 오랜만에 만난 부모와 장남내외, 그리고 오빠 집을 찾은 큰딸 시게(스기무라 하루코)는 지나간 추억을 떠올리며 모처럼 이야기꽃을 피운다. 부부는 건강한 자식들의 모습에 흐뭇해 하지만 대화는 어딘지 어색하고 겉을 맴도는 것만 같다.
 
다음날 시내 구경을 시켜주기로 약속한 큰아들은 환자가 오자 왕진을 가야 한다며 집을 나가버린다.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진 부부는 무료한 시간을 보내다 큰딸이 운영하는 미용실을 찾아온다. 딸은 남편 쿠라조(나카무라 노부오)에게 부모의 관광안내를 떠넘기려 하지만 남편은 일이 있어서 안 된다며 거절한다. 결국 노부부는 딸의 집에서도 종일 하릴없는 시간만 보낸다. 큰딸 시게는 할 수 없이 혼자 살고 있는 올케 노리코(하라 세츠코)에게 두 사람의 여행안내를 부탁한다.
 
허름한 아파트에 살며 직장생활을 하는 노리코는 8년 전 남편이 전쟁터에 나가 사망한 이후 지금껏 혼자 살고 있는 처지. 시누이의 전화를 받은 그녀는 흔쾌히 시부모의 여행 수발을 들기로 하고 회사에 하루 휴가를 낸다. 드디어 부부의 도쿄 관광이 시작된다. 부부는 투어버스를 타고 시내 빌딩 숲을 누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자신의 아파트로 부부를 모시고 온 노리코는 부족한 살림에도 진심을 다해 대접한다. 아직도 죽은 아들 쇼지의 사진을 걸어 놓고 있는 노리코에 대해 부부는 미안한 감정을 드러낸다.
 
한편 큰아들과 큰딸은 부모가 언제까지 도쿄에 머물러 있을 지 걱정이다. 부모를 자신들의 곁에서 적당히 떼어 놓을 요량으로 둘은 돈을 갹출해 시즈오카 현 아타미 온천으로 보내버린다. 바닷가 휴양지 아타미로 온 부부는 밤늦도록 떠들어대는 젊은 행락객들의 소음에 잠을 못 이룬다. 간밤에 잠을 설친 부부는 이른 아침 바닷가로 나와 바람을 쐰다. “이런 곳은 젊은 사람들이나 오는 곳이야.”라는 남편의 말에 아내는 집으로 돌아가자고 답한다. 자리에서 일어나던 아내는 어지럼증을 호소하고 남편은 “잠을 못자서 그래.”라며 위로한다.
 
큰딸 시게의 미용실. 시게는 생각보다 일찍 돌아온 부모를 마땅치 않게 여긴다. 두 노인을 보고 누구냐고 묻는 손님의 말에 딸은 “좀 아는 사람이 시골에서 왔다.”는 식으로 대답해 버린다. “2~3일 쉬다 오라 했잖느냐.”는 딸의 핀잔에 두 사람은 폐를 끼치는 것 같아 이제는 돌아가려고 한다고 말한다. 마침 미용실에서 강습회가 열리는 관계로 잠잘 곳마저 없어진 부부는 거리로 나선다. 자식의 집에 와서도 잘 곳이 없다는 사실에 남편은 헛웃음을 짓는다. 부부는 우에다 공원 입구에 쭈그리고 앉아 요기를 한 뒤 보따리 하나씩을 들고 각자 잘 곳을 찾아 떠난다. 남편은 도쿄에 사는 옛 고향사람을 방문하고, 아내는 며느리 노리코의 아파트로 향한다. 잘 곳이 여의치 않은 남편은 고향사람 둘을 만나 밤새 술잔을 기울인다. 노리코는 다시 찾아온 시어머니에게 안마를 해주며 편안한 잠자리가 되도록 돕는다. 시어머니는 노리코를 향해 아직 젊으니 좋은 사람 만나서 꼭 재혼하라고 당부한다. 진심이 묻어나는 어머니의 말을 들으며 노리코는 눈물짓는다.
 
다시 큰딸 시게의 미용실. 한밤중에 파출소 경관이 술 취해 비틀거리는 아버지와 그의 친구를 부축해 와서 시끄럽게 문을 두드린다. 미용의자에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어버리는 아버지를 본 딸은 짜증을 낸다. 밖으로 자러 나갔다가 혹까지 달고 돌아온 아버지가 딸은 귀찮고 밉기만 하다. 다음날, 빠듯한 벌이로 자신도 어렵게 사는 며느리 노리코는 어머니 손에 용돈을 쥐어주며 이별을 아쉬워한다.
 
자식들에게 신세지는 것이 못내 미안한 부부는 자신들의 집으로 떠난다. 그런데 여독 탓인지 아내 토미는 도중에 병을 앓게 된다. 부부는 오사카에 내려 넷째아들 케이조(오사카 시로)의 집에 머물게 된다. 그 일로 케이조는 회사에 지각한다. 엄마 나이를 묻는 동료직원의 질문에 케이조는 “60은 넘었고, 70이었던가? 80이었던가?”라며 남 말하듯 말한다(엄마의 나이는 68세다). 그런 케이조를 보고 동료는 말한다. “잘 해드려. 효도하고 싶을 때 부모는 안 계셔.”
 
부모는 변해버린 자식들이 조금은 서운하지만 그래도 편안하게 사는 모습을 보아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큰아들은 도쿄 구경도 시켜드리고 아타미 온천도 보내드렸으니 부모님도 만족하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오사카에서 어머니의 위독함을 알리는 전보가 날아온다. 어머니의 병환 소식에도 큰아들은 그저 담담할 뿐이고, 싸가지 없는 큰딸은 바쁜데 귀찮은 일만 생긴다고 투덜거린다. 소식을 접한 노리코는 도쿄에서 보냈던 부모님과의 짧은 시간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긴다.
 
앓아누운 아내는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숨을 거둔다. 가족들이 모인 가운데 조촐한 장례식이 치러진다. 장례를 마친 가족은 둘러앉아 식사를 하며 엄마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 한다. 그러면서 큰딸은 엄마의 유품 중 쓸 만한 것은 모조리 챙겨간다. 코이치와 시게, 케이조는 장례가 끝나자마자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돌아간다. 아버지는 그런 자식들에게 멀리서 와줘서 고맙고 미안하다고 말하지만 착잡한 듯 술잔을 기울인다. 노리코는 시아버지 곁에 좀 더 머물며 일을 돕는다. 며칠 뒤, 노리코도 도쿄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된다. 막내딸 쿄코는 노리코에게 너무나 변해버리고 이기적인 언니, 오빠들의 태도에 불만을 털어놓는다. 그런 쿄코를 향해 노리코는 이렇게 말한다. “그렇지만 쿄코․․․, 나도 네 나이 땐 그런 생각을 했어. 하지만 자식이란 크면 점점 부모에게서 멀어지는 법이야. 그들도 자신만의 생활이 있는 거야.” 쿄코는 되묻는다. “그럴까요? 하지만 전 그렇게 되기 싫어요. 그럼 부모 자식 관계가 무슨 의미예요?” 노리코는 “그래, 하지만 다들 그렇게 변해가는 것 아닐까?”라고 답한다.
 
쿄코가 학교에 출근하고 슈키시와 며느리 노리코만 남은 자리. 슈키시는 아내가 도쿄에서 노리코와 함께 잤던 때를 가장 고맙게 생각했다는 말을 전한다. 그러면서 다시 한 번 노리코에게 새 삶을 살아가라고 간곡하게 부탁한다. 노리코는 자신이 지금의 생활을 얼마나 버텨낼 수 있을지 두렵다고 고백한다. 슈키시는 아내가 젊은 시절부터 간직해 온 낡은 시계를 노리코에게 쥐어주며 며느리의 행복을 빈다. “이상한 일이야. 내가 낳아 기른 자식보다 타인인 네가 우리에게 훨씬 잘해줬단다. 정말 고맙다.”는 슈키시의 말에 노리코는 오열한다.
 
도쿄로 향하는 기차 안. 어머니가 남긴 시계를 매만지며 노리코는 회한에 젖는다. 도쿄행 열차가 지나는 시간에 맞춰 교실 창밖을 내다보는 쿄코의 마음도 편치 않다. 모두가 떠나버리고, 홀로 남은 슈키시는 마루에 앉아 밖을 내다보고 있다. “모두들 돌아가고 쓸쓸하시겠어요?”라는 옆집 아낙의 말에 슈키시는 “혼자되니 갑자기 해가 길게 느껴지는군요.”라고 답한다. 아내의 부재로 텅 비어버린 것만 같은 집안은 이내 고요와 적막에 싸인다. 슈키시의 인생에서 가장 길었을지 모를 그 여름의 한낮은 무심한 듯 천천히 흘러가고, 멀리 사라지는 똑딱선 기적소리는 노인의 마음을 더욱 쓸쓸하게만 한다.
 
다시 생각하는 가족의 의미
 
 ‘동경이야기’는 먼 나라에 사는 남의 이야기로만 볼 수 없는 영화다. 도시에 사는 자식들을 보기 위해 시골에서 올라왔다 다시 시골로 돌아가는 한 노부부의 일상을 비추지만, 그 평범함 속에는 부모와 자식 관계, 혈연과 비 혈연, 핵가족화 이후 변화된 가정의 모습 등 현대 사회가 내포한 다양한 문제들을 모두 담고 있다. 다만 영화의 전반적인 톤은 효도의 강조보다는 변화하는 세태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데 방점을 둔 듯하다. 영화 어디를 봐도 서로 원망하거나, 서운해 하거나, 악악거리며 싸우는 모습은 없다. 오즈 감독은 그저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아픔을 느끼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오즈 야스지로(1903~1963)감독은 구로사와 아키라, 미조구치 겐지와 더불어 쇼와시대(昭和時代: 히로히토가 천황으로 재위한 1926~1989) 일본 영화계를 이끈 3대 거장 중 한명이다. 1927년 ‘참회의 칼’이라는 작품으로 데뷔한 그는 할리우드풍의 관습을 거부한 작가다. 일본의 가정과 가족관계에 관한 문제에 천착했던 오즈는 급속한 산업화에 따른 시대상의 변화, 가족제도의 균열, 핵가족의 어두운 이면, 가족의 죽음과 결혼, 가장의 실직 등 가족 구성원이라면 겪을 수밖에 없는 공통의 사회적 문제들을 깊이 있게 다뤄왔다. 일상사를 무심한 듯 매우 관조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그의 트레이드마크. 그는 죽음조차도 일상의 연속인 듯 매우 덤덤하게 표현한다. 감정고조를 위한 음악사용도 거의 하지 않는다. 배우들의 쓸데없는 연기도 요구하지 않는다. 이리저리 바쁘게 이동하는 카메라움직임도 싫어한다. 극도의 형식미를 통해 꾸미지 않은 ‘진실의 힘’을 보여주려는 것이 그가 추구하는 바다.
 
오즈 야스지로는 일명 ‘다다미 쇼트(だたみ Shot)’라는 촬영기법을 최초로 창안해 낸 인물이다. 다다미(일본 전통 가옥의 바닥에 까는 장판으로, 돗자리와 비슷하다) 쇼트란, 방바닥에 앉아있는 등장인물의 눈높이에 맞춰 카메라를 세팅해 놓고 촬영하는 기법을 말한다. 다다미쇼트는 인물 표정이나 감정을 카메라의 주관적인 해석 없이 사실 그대로 관객에게 전달하는 데 목적을 둔다. 고정된 카메라가 촬영하므로 인물들은 큰 움직임 없이 마치 네모난 흑백판화처럼 담담한 모습으로 표현된다. 그래서 오즈의 영상은 매우 정적이고 회화적인 느낌을 준다. ‘동경이야기’는 이 같은 오즈 특유의 미학이 가장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다다미 쇼트는 이전의 서구영화에서는 볼 수 없던 새로운 시도여서 당시 영화계에 큰 화제가 됐다. 현란한 카메라 기술을 삼가고, 일상의 사실적인 모습만을 기만 없이 묘사하는 만큼 오즈의 영화는 어느 한군데에 특별한 강세를 두지 않는다. 당연히 화면은 정적이고 사건의 전개는 단조로울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즈의 영화가 꾸준히 주목받는 이유는 아무리 하찮은 것일지라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한다는 철학적 성찰을 담은 온화한 시선 때문으로 풀이된다. 평론가들이 구로사와 아키라의 작품보다 오즈의 영화를 더 높게 평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때의 동경, 그리고 지금의 서울은․․․
 
아버지 히라야마 슈키시를 연기한 류 치슈(1904~1993)가 오즈 영화의 아이콘이었다면 (그는 52편의 오즈 영화에 출연했으며 거의 모든 아버지 역할을 독점했다), 며느리 노리코 역을 맡은 하라 세츠코(1920~2015)는 오즈 감독의 뮤즈였다. 일본의 전통적 가치와 아름다움을 완벽하게 추구했던 그녀는 청순미의 대명사로 불렸으며 오즈의 영화에서 주로 착한 딸, 어진 아내와 며느리 역할을 도맡았다. 그녀의 멘토가 된 오즈 감독과의 만남을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동경이야기’ 출연 당시의 나이는 33세. 한 번도 결혼하지 않아 ‘영원한 처녀’라는 별명을 얻었고 오즈가 암으로 사망한 1963년 이후 돌연 은퇴한 후 52년간 일체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은둔했다. 그래서 ‘일본의 그레타 가르보’라는 별명도 붙여졌다. 2015년 95세의 나이에 폐렴으로 사망한 사실 역시 한참 뒤에나 밝혀졌다. 그녀처럼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오즈 감독이 그녀를 짝사랑했었다는 사실은 유명한 일화로 전해진다.
 
‘동경이야기’ 속 에피소드는 동양적 가치를 존중하는 우리네 삶과 닮은꼴이 많다. 한일 양국의 미묘한 정치적 관계를 떠나 두 나라 국민이 공유하는 희로애락의 감정은 크게 다른 것 같지 않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나면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1953년 동경의 모습과 2018년 서울의 모습은 과연 어떻게 다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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