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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향 서울낭송회'와 함께하는 금주의 시 (14) <무정>

 

 

무정
 
이진욱
 
 
남보다 먼 아버지였다.
단 한 번도 집 떠난 적 없지만 늘 밖이었던 아버지였다.
가진 것은 뒷짐뿐인
검불도 쥐지 못할 만큼 가벼운 아버지였다.
전부(全部)였으나 일부(一部)도 아니었던
세월만 필사하던 아버지였다.
그림자마저 점점 짧아져 희미해지던 아버지였다.
 
난생 처음 아버지의 전화를 받았다. 여유가 되면 오십만 원만 빌려 달라고. 엄마에게 보청기를 해줬으면 한다고. 너도 자식 키우느라 힘들 텐데 미안하다고. 가을쯤 갚는다고 했다. 오래전부터 깊고 깊은 달팽이관 속에서 헤매던 엄마였다. 뭔 말씀이냐고. 당장 보내 드린다고. 더 필요하지 않으시냐고. 부자간에 뭘 갚느냐고. 부담 갖지 마시라고 했다. 수화기를 열 번은 더 들었다 놓았을 아버지의 무정한 손이 어깨 위에 얹혀 지는 듯했다. 달팽이관 속에서 달팽이가 울었다.
 
 
 
 
 
 
▷▶ 작가 이진욱 약력 --------------------------
 
  * 2012년 ≪시산맥≫ 등단
  * 시집 ≪눈물을 두고 왔다≫

 

 

silverinews 이진욱  news1@silver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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