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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산야 에세이] 마음에 대하여 87
 
 
참나를 찾아서_#43. 업과 업둥이
 
 생명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업(業), 내 마음에 흔적이 있어서이다. 따라서 모든 것이 전부 업이라고 한다면 사실 숨 하나 쉬고 사는 것도 업이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업이라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으면 그것은 모두 다 업이 된다 할 것이다. 그러므로 모두 업이라는 말이 아니라, 이치에 맞지 않는 행위의 결과가 업이 되므로 숨쉬는 것 자체는 업이 아니나 어떤 숨을 쉬고 사는가의 마음 자세가 중요하다 할 것이다.
 
인간의 몸은 하나인데 업이 만들어지는 곳은 마음(진리이치)과 몸(물질이치) 이 두 가지라고 해야 이치에 맞는다. 그러므로 나 자신이 인간(人間)이라는 존재로 태어나 삶을 산다는 것 그 자체가 바로 ‘업둥이’라는 뜻이며 내가 인간으로 존재한다고 해서, 내가 온전해서, 완벽해서, 잘나서, 대단해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 그 이유는 오로지 내가 존재해야만 하는 업(흔적)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 이치에 따라 제각각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업의 발생과 소멸은 이치에 맞지 않는 행위를 했을 때가 악업이 되는 것이고, 이치에 맞는 행위를 하면 그 업은 소멸이 된다. 따라서 내 마음에 흔적이 없어지면 업(業)이 소멸한 것이고 마음에 흔적이 남아 있으면 업이 한참 진행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결국, 우리가 ‘업을 소멸하자’는 말을 하지만, 업(業) 소멸은 그 어떤 대상에게 울고불고 빈다고 해서 될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에 남아 있는 흔적의 근본적인 원인을 알고 그 흔적을 없애는 것이 업 소멸(괴로움)의 정석이다.
 
삶을 살면서 내가 그 무엇에게 마음이 끌린다는 것은 새로운 업의 시작을 의미하고, 이것을 인간은 사랑, 우정, 행복의 포장지로 포장을 한다. 내가 그 무엇을 마음에서 아직 지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그 흔적이 있다 할 것이며, 업연(業緣)이 지속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업의 발생은 사랑, 행복, 우정으로 다가오고 업의 소멸은 그 끌림이 없을 때 소멸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순리(順理)와 역리(逆理)라는 것은 이치에 맞는 행위가 순리의 행이고, 역리라는 것은 이치에 벗어난 행위가 역리가 되는 것이다.
 
우물가에는 숭늉이라는 것이 없다. 숭늉은 순리에 따라 곡식으로 밥을 짓는 순리(順理)의 과정을 따라야만 비로소 자신의 입맛에 맞는 숭늉을 얻을 수 있다. 어리석은 사람은 농사를 지을 생각을 하지 않고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고, 현명한 자는 밥 지을 방법만 생각하고 그에 맞는 준비를 먼저 하는 사람이다. 지혜로운 자는 땅(마음 밭)을 구하고 씨앗을 모으며 씨앗을 뿌릴 밭을 먼저 일구는 사람이다.
 
 

silverinews 천산야  news1@silver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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