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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산야 에세이] 마음에 대하여 95
 
참나를 찾아서_#51. 의식의 정의(正意)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은 다들 ‘바른 의식’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의 의식이라는 것은 내가 전생에 지었던 업에 따라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그 의식이 맞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업에 따라 정해진 운명을 산다. 하지만 의식은 업이 있어 존재하는 입장이므로 100% 깨어 있는 의식, 이치에 맞는 관념을 가진 의식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래서 굳어진 그 의식,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는 ‘이치(理致)’에 맞는 말로 내 의식과 운명을 바꿀 수 있지만, 문제는 여기에 내가 말하는 것이 맞는 말인가 틀린 말인가를 분별할 수 있는 것 또한 각자의 몫이니 안타까운 시간만이 흐른다. 운명은 존재한다. 그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것이 이치에 맞지만, 이것도 나라는 아상의 마음이 없어야만 가능한 것이고,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오로지 내 관념이 아닌 나의 바른 의식이 있어야만 분별할 수 있으니 이 ‘바른 의식’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나의 의식에 따라 또 다른 내일이 그에 맞게 만들어지는 것이 자연의 섭리다.
 
인생은 ‘나’라고 하는 각자의 의식에 따라 마음이 그대로 펼쳐져 있는 환경에 살고 있으므로 지금 각자가 어떤 것에 대하여 뭔가의 문제가 있는데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이 같은 원인은 이미 자신의 주변에 다 표현되어 나타나 있지만 스스로가 그것을 보지 못하는 것뿐이다. 이 이치를 스스로 아는 것이 ‘나를 알자’의 정의(正意)가 된다 할 것이다. 따라서 이 마음의 작용은 나 자신의 부부관계, 부부와 자식, 직장, 사업 등에서 이미 각자의 본성(마음)은 다 표출되어 있다. 그래서 내가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이미 내가 전생에 지은 그 흔적으로 이생에 그 이치대로 받는 인과응보라 할 것이다. 그래서 생명체로 존재한다는 것은 내 마음에 뭔가의 흔적이 있어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므로 인간(생명체)은 그 업(흔적)에 따라 갖가지 모습(化現)으로 존재한다고 해야 이치에 맞는 말이 된다. 따라서 운명은 있다. 그러나 그 운명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고 해야 이치에 맞는 말이 되고 이생에 인간으로 존재하는 것은 이 이치를 알기 위한 기회를 가진 것이 전부다.
 
인생을 사는데 의식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 이유는 무엇이 옳음인가 그름인가를 분별할 수 있는 도구는 바로 의식(意識)이기 때문이다. 비유하여 말하면 의식 있는 사람이 운전하는 자동차와 의식이 흐려 있는 사람이 운전하는 자동차는 비록 같은 도로(인생길)를 달린다고 하지만, 그 자동차(삶)가 가는 모습은 다르다. 마음공부라는 것도 인생을 산다는 것도 결국 이와 같으므로 다 같은 인간의 모습이라고 하겠지만 그 삶은 각자의 의식에 따라 다 다르다. 문제는 스스로의 의식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이치에 맞는 말을 기준으로 나의 의식을 깨어나게 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삶과 인생에 있어 ‘삶이 나라는 인간을 속인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과 같은 삶의 환경이 되게끔 나 스스로 만들었기 때문에 ‘삶이 나를 속일지라도 결코 노여워하거나 슬퍼하지 말라. 현재의 나는 자업자득·인과응보의 이치에 따라 그 이치대로 존재하기 때문이다’라고 해야 이치에 맞는 말이 된다.
 
 

silverinews 천산야  news1@silver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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