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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산야 에세이] 마음에 대하여 96
 
참나를 찾아서_#52. 운명과 나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전생에 자신이 지어놓은 업의 순서에 따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생에서 삶이 진행되고 있는데 이것을 정해진 운명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어떠한 마음을 만들었는가에 따라 생명체는 각자의 그림자로 이생에서 이치에 맞는 연기(演技)를 하는 것이 인생살이의 전부이며 이 연기가 끝이 나면(업의 유통기한에 따른 시간) 생명체는 죽거나 헤어지게 된다.
 
따라서 이같이 정해진 운명이라는 것을 바탕으로 존재하는 내가 나의 마음을 어떠한 마음으로 만들어가는가에 따라 나 자신의 운명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으므로 고정된 운명은 있다. 그러나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진리적 입장이고 자연의 이치·섭리다.
인생을 산다는 것은 창과 방패와 같은 것이다. 온 세상은 무수한 창(말, 言)들이 나를 겨누고 있다. 이것이 창이라고 하면 방패는 무엇인가? 그것은 나 자신의 의식이며 이 의식이 어떤 것인가에 따라 그에 맞는 방패가 나에게 만들어지며, 이것이 세상 속 창(말)으로부터 나 자신을 지켜낼 수 있는 유일한 방패(도구)라고 할 것이다.
 
나에게 괴로움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온전하게 자신의 방패를 만들지 못해서이며 그만큼의 창을 맞고 있으므로 그것에 맞게 괴로움이라는 창은 나의 방패를 뚫고 들어올 것이다. 인간의 어리석음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길바닥에 무수하게 널려 있는 돌이 있다. 그 돌에 내 발부리가 채여도 내 몸에 그 충격을 느끼지 못하면 어리석은 사람은 그것은 돌이 아니라 생각한다. 그러나 돌이 내 몸에 어떤 충격(괴로움)을 주면 비로소 어리석은 인간은 그것이 무엇인지 쳐다보게 되는 것과 같다. 마음공부라는 것은 이같이 내 몸에 충격을 주기 전에 미리 그것이 돌(괴로움)임을 알아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 이치를 알아가는 것이 인생을 잘 사는 것이고, 이 이치를 모르고 사는 삶은 무명의 삶, 무의식의 삶이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我)라는 주관적(主觀的) 의식이 이치에 맞게 깨어 있지 못하면 결국 나라는 존재는 빙의의 부역자로 살아가게 된다. 설령 내가 살아 있어 밥을 먹는다는 의식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바른 의식이 아니다. 내가 말하는 바른 의식이라는 것은 이치에 맞게 사고하는 의식을 말하는 것이고, 의식이 이치에 맞게 깨어 있지 못하면 결국 나는 빙의(무의식의 다른 마음)의 영향을 받고 그 빙의의 부역자에 불과한 인생을 사는 것이다. 비록 몸을 갖고 있지만, 나의 의식에 따라 다른 사람의 마음(빙의)으로 행동하는 부역자가 될 수 있다 할 것이다.
 
 

silverinews 천산야  news1@silver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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