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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산야 에세이] 마음에 대하여 68
 
 
참나를 찾아서_#24. 현명함과 어리석음
 
 어리석은 사람은 보이는 물질과 가식된 그 사람의 말을 사랑, 행복이라고 느끼며 자신의 몸과 마음이 불나방처럼 무의식 속에 빠져 모든 것을 다 주어버린다. 이것은 마치 불나방이 불만 보고 그 불 속으로 뛰어들어가는 것과 같은데 이 안에는 각자의 업이 작용하고 있으므로 그렇다. 그러나 이치를 알고 있는 현명한 자는 그 상대의 본성을 알므로 무의식으로 내 마음을 내어 주지 않는다. 세상에는 무수한 말이 있다. 현명한 자는 그 말에 옥석(玉石)을 가릴 줄 알고 보배로운 말이 무엇인가를 알고 그 말에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내어 줄줄 아는 사람은 의식(意識)이 깨어 있는 사람이라고 해야 맞고, 지혜가 있는 사람이며, 현명한 사람이고 진정으로 마음을 잘 쓰고 인생을 사는 사람이라고 해야 이치(理致)에 맞는 말이 된다.
 
따라서 똑같은 시간을 살지만, 어떤 것에 마음을 의지하는가에 따라 그 시간의 의미는 달라진다. 그러므로 이 시간이라는 것은 어떤 식(형태)으로든지 인간의 마음을 길들인다. 그래서 오늘에 존재하는 나는 과거의 시간에 길들여진 것으로, 나는 이 세상 내가 만든 그 시간의 흔적으로 내일모레 나는 존재하게 된다. 이 세상 우리는 모두 다 같은 시간 속에 살지만, 이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미래의 나의 모습은 그 이치에 맞게 또다시 지금처럼 나에게 주어질 것이다. 누구나 다 사용하는 이 시간, 지금 나는 어떤 시간을 어디에 어떻게 쪼개어 쓰고 있는가를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보통 사람이 쪼개어 쓰는 그 시간은 각자가 생각하는 마음이 통하는 사람, 마음이 맞다는 사람에게 말을 하고 서로는 그것을 사랑, 행복이라는 말로 합리화하고 살지만, 그러나 그것은 상대와 나의 업연의 이치(동업의 개념)가 같으므로 육신이 있으므로 인식하는 마음인 <나>라는 존재가 이같이 사랑, 행복으로 그 업을 인식하고 그 업의 유통기한의 시간을 보내는 것뿐이다. 따라서 그 업의 이치와 인연의 관계가 어떤 것인가에 따라 나의 인생(운명)의 길은 달라지므로 마음이 통하고, 누구와 ‘마음이 맞는다’는 것은 업의 유통기한이 시작됨을 알리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반대로 마음이 없다, 가지 않는다는 것은 업연의 고리가 끊어져 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결국, 마음이 통하는 것은 상대와 이치에 맞는 마음이라서 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대와의 업(業)의 연결고리가 같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며, 그 매듭을 풀기 위해 우리는 상대를 만나는 것이 전부이고, 이 업에 따라 부부로, 자식이라는 관계로 만나며, 따라서 이 개념으로 나와 가까운 인연일수록 그 업연의 고리가 크다 할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사랑, 행복이라는 가식된 말로 포장하는 것뿐이며,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마음이라고 말하는 아상(我相)이라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리석은 인간은 사랑, 행복이라는 말로 가식을 합리화하고 어리석게 그 속에 파묻혀 무의식(無意識)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사랑, 행복이라는 것은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는 말인 애욕(愛慾)이라고 하는 것이다. 같은 시간을 보내더라도 누구와 어떤 시간을 보내는가는 매우 중요하다 할 것이다.
 
 

silverinews 천산야  news1@silver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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