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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산야 에세이] 마음에 대하여 73
 
참나를 찾아서_#29. 옷과 포장지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자신에게 맞는 옷이 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보이는 육신(마음의 때, 흔적)을 가리기 위해 옷이라는 것으로 마음의 때(흔적)를 감추려고 그 몸을 포장하고 남에게 숨긴다. 그러므로 상(相)이 큰 사람일수록 능력도 되지 않으면서 화려하고 비싼 옷(포장지)을 찾고, 보이는 그 옷(물질)으로 수시로 자신을 변화시킨다. 이것은 결국 자신의 흔적을 가리고 각자의 본성을 치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현명한 자는 육신을 가리는 포장지를 먼저 찾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마음의 때를 먼저 벗기기 위해 진리라는 것을 찾는다.
 
마음의 때를 벗기면 흔적(때)은 자연스럽게 없어지므로 옷(물질)이라는 것으로 나라는 상(相)을 가릴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며 따라서 그 허상의 옷은 나에게 거추장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에 그러한 것(가식)으로 보이는 내 몸이라는 물질을 먼저 포장하지 않는다. 이것은 진리이치를 알면 물질의 그 옷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인간이 결혼을 할 때 온갖 것으로 몸을 치장하는 이유는 마음의 흔적(때, 흠결)을 최대한 포장하기 위해서라고 해야 이치에 맞는 말이 된다.
 
세상에 존재하는 생명체는 모두 그 마음에 얼룩진 하자(흔적)가 있기 마련이고 문제는 스스로가 그 하자가 어떤 것인가를 모르고 살지만, 하자(흔적)의 종류만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같이 흔적(업)이 있는 생명체의 처지에서 모두가 부처, 천사라고 하는 것은 진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애당초 존재할 수 없는 말이다. 따라서 이 생에 의식 있는 인간으로 존재하는 입장에서 나 자신의 하자를 스스로 알고 얼마나 보수공사를 하는가에 따라 다음 생에 그것에 맞는 집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업이 있어 존재하는 입장에서 하자(흔적)가 없는 온전한 집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없다 할 것이고, 반대로 흠결이 없다면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하등에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나를 알자’라는 것은 이같이 내 마음에 하자(흔적)를 알고 얼마나 진리이치에 맞는 보수공사를 하는가에 따라 이생에 그에 맞는 내 집이 만들어지고 지어진 그 집에 머물 수 있는 것이 전부이며 그 집의 이치대로 나는 다시 존재할 뿐이다. 그러므로 내 집의 하자는 나 스스로 고쳐가는 것이고, 내 마음에 하자(흔적)는 어떤 존재나 대상이 고쳐주지 않는다는 것이 진리적 입장일 뿐이다.
 
 

silverinews 천산야  news1@silver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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