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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년학회 칼럼] 한국의 유산기부문화
[한국노년학회 칼럼] 한국의 유산기부문화
 
서경석 (사회복지법인 기아대책 대표이사)
 
 
서경석
(사회복지법인 기아대책 대표이사)
유산이란 죽은 사람이 남겨 놓은 재산, 앞 세대가 물려준 사물 또는 문화, 상속에 의하여 상속인이 피상속인으로부터 물려받는 재산 등으로 설명되고 있다.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유산은 주로 물적 자산으로써 유족 즉 남겨진 가족에게 상속하는 것이 관례이다. 유산은 상속자 간의 갈등을 유발하기 쉬워서 가족 간 관계를 해칠 뿐 아니라 다투거나 심지어 법정 다툼까지 가는 경우가 많다. 법조계의 자료에 의하면 유류분 청구소송은 10년 동안 4.6배가 늘었고, 1억 원 이하가 64%이며 10건 중 1건은 1,000만 원 이하 소송으로 유산분쟁 소송이 대중화되고 있다고 한다.
 
유산은 한 사람이 일생동안 살면서 모아진 재산이면서 사회적 자산이기 때문에, 남겨진 자산이 올바른 기능을 갖도록 하는 것이 사회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유산은 갈등으로 인하여 그 가치를 발휘하지 못하고 오히려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여 사회발전에 역행하는 현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반면 유산을 기부하는 일은 흔치 않은 선행으로 꼽힌다. 유산은 가족의 것이라는 권리의식이 강하기 때문에 기부의사도 가족의 반대로 무산되는 경우도 많으며, 가족의 눈치를 보거나 많은 설득이 필요하기도 하다. 비생산적인 한국의 유산문화가 기부로 이어질 수 있는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지기를 희망하며 한국의 유산기부문화를 전망해 본다.
 
유산기부란 유언자가 자신의 재산 전부 또는 일부를 비영리기관, 복지재단 등 유언자와 관계없는 제3자에게 유증으로 기부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유산기부인식과 제도가 낙후하여 그 실적이 적어 국가전체 모금액 12조9천억 원 중에 5천억 원도 채 안 되어 0.5%도 미치지 못한다(2018년 기준). 반면 영국, 미국 등 외국은 다르다. 영국은 전체기부금 89억 파운드(약 13조 원) 중 유산기부 규모는 총 22억4천 파운드(약3조3천억 원, 2016년 기준)나 되며, 이는 국가전체 모금액의 1/4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또한 미국은 전체기부금 4,277억 달러(약 500조 원) 가운데 유산기부가 약 8%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유산기부가 적은 이유는 유산기부에 장벽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 심리적 장벽이 높다. 유산은 가족에게 물려준다는 관례에 익숙해 있고, 가족의 권리의식이 존재한다. 생전에도 재산이슈가 가족관계의 중심에 있기도 하고, 자식들끼리는 유산분배에 손해 보지 않으려는 기싸움도 존재한다. 심지어 노후에는 부모의 재산권 행사를 방해하는 경제적 학대행위로 나타나기도 한다. 2006년 주택연금제도 시행 초기에는 노인이 주택으로 주택연금가입을 하는데 자녀가 반대하여 무산되는 경우도 많았다. 이러한 유산기부에 대한 사회적 낮은 인식은 기부의 뜻이 있는 사람에게는 커다란 심리적 장벽일 수밖에 없다.
 
둘째, 사회적 장벽이 높다. 심리적 장벽을 넘어서도 기부과정이 까다롭고 복잡한 문제에 부닥친다.
 
먼저, 법 제도의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우리나라 세법은 세금부과의 목적과 회피의 감시기능이 강하다 보니 유산기부에 대하여 호의적이지 않다. 유언장을 작성하고 관리하고 보관하는 것 자체의 어려움이 있어서 기부를 위한 유언장의 효력도 견고하지 못하다. 또한 다루는 다양한 유형의 재산에 대한 기부처리가 복잡하여 법률적인 검토과정이 쉽지 않다. 유언장 작성은 일반화되지 못해서 유산처리에 대한 사회화된 제도나 매뉴얼이 없다. 영국에서는 60%가 유언장을 작성할 만큼 일반화되어 있고 이를 뒷받침할 만한 제도와 법률적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기부를 받는 비영리기관에서도 다양한 검토를 하게 된다. 즉, 유산기부금품에 대한 법적, 윤리적 검토를 해야 하며, 현재가치뿐만 아니라 기부가 실현될 시점의 미래가치를 고려하기도 하고 부동산 기부약정시에 생존 시 일정급여제공 조건과 기부실현 시점까지의 권리관계, 비용, 관리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이처럼 법률적 사회적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것이 유산기부의 큰 장벽인 셈이다.
 
그럼에도, 민간단체를 통한 유산기부의 사례가 있고, 미담으로 소개되기도 하며, NGO나 복지단체에 기부되는 사례는 큰 도움을 주기도 한다. 노인복지기관 등에서는 오래전부터 노후준비를 위하여 웰다잉(well dying)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고, 유언장 쓰기를 해보면서, 자연스럽게 유산기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최근에는 개별단체별로 유산기부에 관심을 갖고 캠페인을 펼치기도 한다.
 
국제구호와 복지사업기관인 희망친구 기아대책은 유산기부자모임인 ‘헤리티지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이 클럽은 생전에 유산기부를 약정한 분들의 모임인데, 기부하시고 고인이 되신 분들도 있다. 1호 가입자인 설0희님은 1억 원 유산기부를 약정하시고 얼마 후 돌아가셨는데 기부자 명의로 아프리카에 학교를 건립하였다. 그 후 감동받은 아들도 유산기부약정을 하고 이 클럽에 가입하였다. 정년퇴직하신 2호분은 가입한 생명보험을 유산기부로 약정하였고, 어떤 분은 살던 아파트를 기부하시고 돌아가셨다. 이처럼 유산은 재산의 전부 또는 일부를 다양한 방법으로 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유산기부문화를 활성화하자는 취지에서 민간단체들이 힘을 모으고 있다. 한국자선단체연합회는 자선단체 NGO들이 모여서 유산기부문화 활성화를 위하여 자발적으로 공익광고 공동 캠페인을 벌이고 있으며, 유산기부 포럼, 정책토론회, 사례공유, 선진국 유산기부제도 연수프로그램을 시행 중이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 등 법 제도개선을 위하여 힘을 쏟고 있다.
 
 
유산기부는 미국, 영국, 호주 등에서는 잘 정착되고 있다. 영국에서는 2000년부터 리멤버 채러티(Remember A Charity)라는 자선단체 연합기구를 통해 유산기부 캠페인을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18개 단체로 추진하였던 것이 현재 200여 개 단체가 참여하는 대규모 캠페인으로 성장하여 오늘날의 유산기부문화가 정착되었다. 2011년 ‘레거시(Legacy)10’ 캠페인이 출범해서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 등이 유산의 10% 기부 서약을 하였다. 세제혜택에 있어서도 2012년부터 상속재산 중 10% 이상을 기부하면 나머지의 상속세율을 40%에서 36%로 감면해 주고 있어 기부자의 실질혜택으로 기부의 문턱을 낮추었다. 미국에는 워런버핏과 빌게이츠가 재산의 사회환원을 약속한 기부클럽 더기빙플레지(The Giving Pledge)가 있다. 미국의 시니어하우징은 대부분 NGO가 운영을 하고 있으며, 입주자의 기부와 유산기부로 운영이 유지된다고 한다. 한국의 실버타운 등의 노인주택은 대부분 영리를 목적으로 운영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한국자선단체협의회가 전국 만 50세 이상을 대상으로 한 2019년 유산기부 인식조사에 의하면, 26.3%가 유산기부 의향이 있으며, 51.6%는 상속세 감면 등을 담은 유산기부법이 제정되면 유산기부를 할 의향이 있다고 응답하였다. 평생 이룬 재산을 좋은 유산기부제도를 통하여 안심하고 기부할 수 있고, 보람을 가질 수 있고, 가족이 기뻐하고, 사회가 인정해주고, 법이 보호해 주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피할 수 없는 고령사회에서 노인이라는 인적자원, 물적자원은 무한한 국가자원이 될 수 있다. 이 자산을 어떻게 인식하고 보호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노인세대가 짐이 되느냐, 힘이 되느냐로 갈릴 것이다.
 
노인이 남긴 자산이 고령사회의 자원이 되고, 재생산되어 다음 세대에게 힘이 되고 국가자원으로서 더욱 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관리되어야 할 것이다. 유산기부문화는 단순히 기부금이 증대되는 효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회갈등비용을 줄이고, 국가의 인적 · 물적 자원의 생산성을 높이며, 국가의 안정감과 따뜻함을 주는 문화적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첫발을 떼는 유산기부문화는 미래를 내다보며 지금부터 정부와 사회가 뜻을 모아 K-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서경석
 
  <주요 약력>
   (현) 사회복지법인 기아대책 대표이사
   (현) 재단법인 한국취약노인지원재단 이사장
   (현) 한국노년학회 산학협력부회장
   (현) 한국비영리학회 NGO분과위원장
   (전) 한국노인종합복지관협회장
   (전) 우리마포복지관장, 서초양재노인종합복지관장 외
   호서대학교 벤처전문대학원 노인복지학 박사(2013)
 
   [수상]
   국민훈장 동백장(2009), 보건복지부장관상(2007)
 
 
 

silverinews 서경석  news1@silver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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