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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년학회 칼럼] 할아버지의 냉장고, 할머니의 운동화
[한국노년학회 칼럼] 할아버지의 냉장고, 할머니의 운동화
 
장숙랑 (중앙대학교 적십자간호대학 교수)
 
 
장숙랑(중앙대학교 적십자간호대학 교수)
냉장고를 열자 냉기가 훅 느껴졌다. 냉장고 안에 음식이 별로 없기 때문일까. 할아버지 혼자 사시는 집에 의사, 간호사, 영양사가 함께 방문했다. 어르신의 냉장고에는 김치통 한 개, 그리고 된장국이 담긴 냄비가 들어있었다. 푸른 채소 같은 식재료는 들어있지 않았다. 냉장고라기보다 냄비 하나 놓인 수납장 같았다. “어르신, 단백질은요? 계란이나 두부, 고기는 안 드세요?” 영양사는 냉장고 옆에 머쓱하게 서 계신 어르신을 올려다보았다.
 
나이가 들면 단백질 섭취가 중요하다. 하루에 단백질 60~72g은 챙겨서 먹어야 근육을 유지할 수 있다. 100g짜리 고기 한 토막에는 단백질이 20g 들어있다. 치즈 한 조각에는 3g, 계란 하나에는 7g, 두유 한 컵에 7g, 두부 한 모에는 약 30g의 단백질이 들어있다. 나열한 식품들을 골고루 잘 선택해서 한 끼에 20g 정도의 단백질을 매끼니 마다 먹는 것이 좋다. 근육이 줄어들지 않고, 뼈를 튼튼하게 유지할 수 있으며, 생리적 기능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화가 진행되면 생리기능이 감소할 수 있고, 약물복용이나 활동량 감소로 영양소 흡수가 어려워진다. 사회활동이 위축되어 혼자 식사하시는 경우가 많다 보면 잘못된 식습관이 생기기도 십상이다. 그러다 보면 영양불량에 빠지고 영양결핍으로 노쇠가 심해져 아파도 잘 낫지를 않고 신체장애가 생길 수 있다.
 
영양결핍 중에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이 단백질 부족이다. 단백질을 꾸준하게 충분히 먹으면, 잘 넘어지지 않고, 넘어져도 뼈가 부러지는 골절을 예방할 수 있다. 인지기능을 유지해서 치매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많은 연구에서 단백질 영양 보충을 했을 경우 신체기능, 하지 근력, 의자에서 일어서기, 걷기 등 여러 측면에서 크게 좋아진다고 보고하였다. 하지 근력이 튼튼하고, 오래 잘 걸을 수 있으면, 낙상과 골절을 예방할 수 있다. 골절을 경험할 때마다 장기요양상태로 진입할 확률이 2배 이상 증가한다고 한다. 장기요양상태에 계신 어르신들도 단백질 섭취를 충분히 하면 욕창발생을 예방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장기간 누워서 생활할 때 새로 발생할 수 있는 건강문제들을 막을 수 있다.
 
영양사는 다음 방문할 때 영양교육용으로 가져다드릴 두부, 계란, 들기름, 버섯, 대파, 양파를 질 좋은 제품으로 주문했다. 맛있게 드실 수 있게 간편한 조리법이 담긴 교육 자료도 열심히 만들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종종 폭음을 하시고 다음 날이면 죄책감과 자괴감에 괴로워하시곤 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친구들과 어울릴 기회조차 없다고 하셨다. 간호사는 술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다. 친구들과 어울리면서도 폭음을 자제하고 술을 가볍게 즐기는 방법에 대해 상담 계획을 짰다. 의사는, 할아버지께서 처방받아 드시고 계신 많은 약들 중 중복되는 약을 정리하고, 약 관리 방법을 설명해 드릴 계획을 짰다. 그렇게 총 6주 동안 매주 할아버지 집에 찾아갔다. 6주 차 마지막 방문하는 날, 할아버지의 냉장고를 열어보고 깜짝 놀랐다. 계란, 두부, 시금치와 대파가 채워져 있었다. 할아버지가 직접 재래시장에서 장을 보셨다고 했다. 영양사가 정성스레 만들어 드린 조리법들은 냉장고 문에 가지런히 붙어 있었다. 새로 구입한 두부 포장 뒷면 영양성분을 꼼꼼하게 읽어 보셨다며 자랑을 하셨고, 매끼마다 식물성, 동물성 단백질을 골고루 번갈아 드시고 있다고 했다. 함께 간 영양사는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며 계속 박수를 쳤다.
 
이번에는 혼자 사시는 여자 어르신 한 분을 의뢰받았다. 작년까지는 건강하셨는데, 최근 들어 부쩍 허약해지셨다고 했다. 의사, 간호사, 물리치료사가 함께 집으로 찾아갔다. 나는 현관에 들어서며 가지런히 놓인 고무슬리퍼 한 켤레를 무심코 보았다. 방에는 요와 이불이 깔려있었다. 자주 누워계시는 듯했다. 우리가 찾아갔을 때에도 이제 막 자리에서 일어나신 모습이었다. 머리카락은 눌려있고 얼굴을 부어 있었다. 상체는 크고 복부는 불룩하지만 하체는 얇고 가늘어 보이셨다. “어르신, 밖에 날이 많이 따뜻해졌어요. 나가서 한 번씩 바람도 쐬고 산책도 하세요?” 물리치료사는 어르신의 팔과 다리 관절 운동범위를 체크하면서 말씀을 건넸다. 어르신은 밖에 안 나가본 지 며칠이나 되었는지도 모르겠다고 하셨다. 남편과 사별한 지 1년째, 지금은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고 아무것도 하기 싫다고 하신다. “할머니, 건강하게 오래 사는 건 무조건 좋은 거잖아요.” 물리치료사가 할머니의 허약해진 다리를 살피는 동안 간호사는 치료적 말 걸기를 시도했다. “건강? 난 다 귀찮아... 머리도 아프고 안 아픈 데가 없어. 이렇게 살아서 뭐해” 말씀하시는 할머니의 목소리는 작고, 느리고, 힘이 없었다.
 
노년기 우울증상의 원인은 다양하다. 사별은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위험요인 중 하나이다. 만성적 통증도 우울증상을 유발하며, 외부와의 단절 또한 중요하고 결정적인 원인이다. 우울증상을 완화하기 위해 먼저 시도해 볼 수 있는 것이 신체활동이다. 노년기에는 신체와 정신건강의 연결성이 다른 연령보다 강하기 때문에, 정신심리적 문제가 있을 경우에도 신체기능을 활성화하는 운동이 아주 큰 도움이 된다. 물리치료사는 집에서 간편하게 할 수 있는 운동법을 설명해 드렸다. 의자를 활용해서 쉽게 할 수 있는 무릎운동, 허벅지 근력운동, 관절 운동을 가르쳐드리며 함께 했다. 같이 간 의사, 간호사도 옆에서 응원하며 따라 했다. 집에서 하는 걷기 운동, 누워서 할 수 있는 코어운동과 스트레칭도 가르쳐드렸다. 유연성 운동은 한 번에 20분씩 하루 3-5번 정도 스트레칭을 꾸준히 하면 된다. 근력운동은 의자에 앉았다 일어나기와 의자에 앉아서 다리 펴기를 각각 10번씩 30분 동안 해야 좋다. 하루 30분 정도 걷기를 병행하면 더욱 좋겠다. 6주간 꾸준히 의사, 간호사, 물리치료사가 방문해서 운동을 같이 해 드리기로 계획을 잡았다. 마지막 주에는 집 밖으로 나가서 산책을 하시게 되길 기대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어르신은 초반에 몇 번 우리의 방문을 거부하셨다. 세상의 끈을 놓친 것 같이 마음이 힘든 어르신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자주 찾아뵙고, 이야기 들어 드리고, 운동을 가르쳐드리는 것, 사실 이것뿐이었다. 하지만 좋은 건강정보를 가진 동네 의사, 간호사, 물리치료사가 이웃처럼 다가가서 성심껏 안부를 묻고 따뜻하게 건강을 챙겨드리면, 할머니의 얼굴색도 조금씩 밝아질 수 있다고 믿는다. 할머니의 집을 나서며 현관 앞에 슬리퍼가 아니라 편한 운동화 한 켤레가 놓여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그 운동화를 신고 활기차게 공원을 산책하실 할머니 모습을 보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집에 계신 어르신들 중 여러 질환을 복합적으로 앓고 계시거나,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 노쇠한 분들을 의사, 간호사, 영양사, 물리치료사, 사회복지사가 직접 가정에 방문해서 상담과 교육을 해 드리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시범적으로 운영해 보고 있다. 노쇠를 예방, 관리하고 스스로 건강관리를 하실 수 있게 각 분야 전문가들이 집에 찾아가서 상담해 드리는 서비스이다. 중앙대 간호학과, 서울시 노원구 보건소,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방문진료 전문기관인 ‘건강의 집’ 의원 의사들이 함께 연구해서 만든 “지역사회중심의 통합노쇠관리 프로그램”이다. 보건소나 동주민센터, 동네의원으로부터 어르신을 의뢰받으면, 다학제팀이 집으로 찾아가서 포괄적인 건강평가로 노쇠정도와 위험요인을 판단한다. 어르신의 건강상태에 따라 상담 및 교육 계획을 잡고, 1주~6주간 개인 건강과외를 해 드리는 것이다.
 
우리나라 모든 어르신들이 노년기에 한 번쯤 이런 서비스를 받으면 좋겠다. 노쇠를 어떻게 예방할 수 있는지, 영양소 결핍 없이 내가 잘 먹고 있는 것인지, 어떤 영양소를 더 보충해야 할지, 내 신체상황에 맞는 운동은 무엇일지, 어떻게 운동하면 되는지, 내가 가진 만성질환을 어떻게 잘 관리할 수 있을지, 이런 궁금증들을 전문가들이 직접 집으로 찾아와서 설명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집으로 방문한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가진다. 가정 내 낙상위험이나 생활환경 등을 살펴보고, 필요한 복지자원을 연결해 드릴 수도 있다. 낙상위험요소를 제거하는 등 환경적 접근도 가능하다. 서울시에서는 서울케어-건강돌봄이라는 이름으로 일부 보건소를 중심으로 이와 비슷한 방문형 건강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50년에 기대수명이 90세가 되는 최초의 국가라고 한다. 그러나 기대수명 증가는 건강수명 증가를 담보하지 않는다. 무병장수가 아니라 유병장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만성질환관리와 장기요양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인건강을 위한 제도와 서비스는 이제 노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노인에 맞게 디자인되어야 한다. 공급자 중심의 파편화되고 분절적인 지역사회 보건의료를 정비하고, 사람 중심의 통합적이고 연속적인 지역사회 건강돌봄 체계로 재편해야 한다. 가정방문형 다학제팀에 의한 건강교육서비스는 그런 의미에서 노인친화적이다. 이것을 건강정책과 보건의료체계 속에 장착하고 활성화 할 수 있는 방안을 우리 모두 함께 고민해야 할 때가 왔다.
 
 
  
  ▶ 장숙랑
 
  <주요 약력>
   2010.9~현재: 중앙대학교 적십자간호대학 교수
   2018.11~현재: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 수석부회장
   2019. 7~현재: 한국노년학회 홍보부회장
   2019. 9~현재: 한국지역사회간호학회 정책이사
   2020. 7~현재: 사회보장위원회 위원
   2020. 7~현재: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 보건의료일자리 특별위원회 위원
   서울대학교 간호학과 학사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보건학 석사, 박사
 
  <저서>
   나이들어도 괜찮을까 (2017, 국가인권위원회, 삶은책)
   Nursing Older Adults, (2012, Open Oxford Press: London)
 

 

 

silverinews 장숙랑  news1@silver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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