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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100년, 인생100년 ㊻ - 굿바이 칠드런
  • silverinews 진고개 신사
  • 승인 2019.11.21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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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100년, 인생100년 ㊻ - 굿바이 칠드런
 
 
  - 제작: 1987년, 프랑스·독일·이탈리아
  - 감독: 루이 말
  - 배우: 가스파르 마네세, 라파엘 페예 외
  - 필름: 컬러
  - 상영시간: 104분
  - 수상: 베를린 영화제 황금사자상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 잠복해 있는 부끄러운 과거를 수면 위로 드러내 고백하는 것처럼 용기 있는 일이 또 있을까.
 
‘굿바이 칠드런(Goodbye Children)'은 2차 세계대전 중에 겪은 한 사건을 계기로 평생 죄책감을 느끼며 살아야했던 프랑스 출신 영화감독 루이 말(Louis Malle)이 자전적 스토리를 근간으로 만든 한 편의 성장영화다.
 
어린 시절 한 소년의 영혼을 박제시킨 비극적 기억과 그에 대한 참회의 심경을 담아낸 ‘굿바이 칠드런’은 가슴을 적시는 라스트의 여운이 오래도록 기억되는 반전영화 최고의 마스터피스 중 하나다.
 
폭력으로 얼룩진 야만의 시대를 살아야 했던 철부지 열두 살 소년의 경험을 오롯이 녹여낸 ‘굿바이 칠드런’은 피 한 방울 튀기지 않고, 요란한 총성을 들려주지 않으면서도 전쟁이 가져다주는 절대적 공포와 극도의 슬픔을 뛰어나게 표현했다는 평가를 얻어왔다.
 
베를린 필름 페스티벌 그랑프리인 황금사자상과 세자르 영화제 7관왕(작품·감독·각본·촬영·미술·음향 ·편집)을 비롯해 수많은 영화제의 상을 휩쓸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굿바이 칠드런’은 종종 관습을 파괴하는 민감한 주제로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해 온 루이 말 감독의 필모그래피에 색다른 명성을 안긴 기념비적 작품이다.
 
깊은 상처로 남은 유년의 기억
 
1943년 나치점령 하의 프랑스 비시(Vichy)정부. 여름방학을 마친 열두 살 소년 줄리앙 쿠엔틴(가스파르 마네세)은  퐁텐블로 근처의 가톨릭 기숙학교로 돌아가야 한다. 엄마와 헤어지기 싫은 줄리앙은 투정을 부려보지만 어쩔 수 없이 기차에 오른다.
 
오랜만에 개학한 기숙학교는 시끌벅적하다. 사춘기에 접어든 소년들은 수도사들을 원숭이라 부르며 놀리고 야한 여자 사진을 몰래 꺼내보기도 한다. 조금 큰 상급생들은 끼리끼리 모여 담배를 피우는 등 크고 작은 말썽을 부린다.
 
개학 첫날. 전학생 한 명이 기숙학교에 도착한다. 소년의 이름은 장 보네(라파엘 페예). 그는 줄리앙의 옆 침대를 배정받는다. 말수가 적고 어딘가 비밀스러운 구석이 있는 보네는 곧 친구들의 놀림감이 된다. 줄리앙 역시 자신보다 키가 큰 보네를 보고 “나에게 까불면 혼날 줄 알라.”고 위협 조로 경고한다.
 
기숙학교의 꼬마들이 놀려대는 사람은 보네 말고도 또 한 명이 있다. 그는 학교식당에서 허드렛일을 맡아 하는 조셉(프랑수아 네그레)이다. 조셉은 덩치는 크지만 다리를 절며 지저분한 몰골을 하고 있어 소년들로부터 늘 ‘악취 나는 똥개’라는 욕을 먹고 차별받는다. 조셉은 학생들이 가져온 식품을 받고 대신 그들이 요구하는 물건(이를테면 담배라든지, 이상한 사진 같은 것)을 구해 주는 암거래 중개자 역할을 한다. 규칙위반인 줄 알면서도 줄리앙은 집에서 가져온 잼을 주고 조셉으로부터 진귀한 우표를 구한다.
 
보네는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받지만 뛰어난 수학능력을 자랑한다. 게다가 작문 점수도 높게 받는다. 뿐만 아니라 보네는 피아노까지 잘 친다. 언제나 상위권을 달리던 줄리앙에게 보네는 강력한 라이벌이 된다.
 
피아노 연주가 서툰 줄리앙은 인기 많은 피아노 교사 다벤느(이렌느 야곱)에게서 “넌 바이올린이나 할 걸 그랬구나.”라는 핀잔을 듣는다. 반면 보네는 슈베르트 독주곡을 멋지게 연주해 그녀의 칭찬을 받는다. 보네가 피아노를 치는 것을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는 다벤느 선생의 모습을 창문 너머로 훔쳐보면서 줄리앙은 강한 질투심을 느낀다.
 
기숙학교 아이들은 가톨릭 신자로서 미사에 참여하고 고해 시간을 갖지만 개신교도인 보네는 늦은 밤 촛불을 켜놓고 별도의 기도의식을 치른다. 그런 모습을 보며 줄리앙은 더욱 보네에게 거리감을 느낀다. 줄리앙은 교장 신부로부터 이교도인 보네를 잘 대해주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언젠가 병역 기피자를 찾아 민병대원이 수도원을 수색했을 때도 교장 신부가 보네를 숨겨주는 것을 목격한 터라 줄리앙은 보네에 대해 더 큰 궁금증을 갖게 된다.
 
결국 줄리앙은 친구들이 없을 때 보네의 사물함을 뒤진다. 그리고 보네가 과거에 받았던 상장을 통해 그의 원래 이름이 ‘장 키펠스타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보네는 유태인이었던 것이다. 유태인의 씨를 말리려는 나치정권의 위협으로부터 보네를 보호하기 위해 교장신부가 특별히 그를 학교에 데려와 숨겨주었던 것.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유태인이 갖는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줄리앙은 그 문제를 더는 깊이 마음에 두지 않는다.
 
어느 날. 숲속에서 보이스카우트 놀이가 벌어진다. 보물찾기를 하며 아이들은 서로 쫓고 쫓는 놀이를 즐긴다. 그 와중에 줄리앙과 보네는 친구들에게 쫓겨 숲 깊은 곳으로 도망간다. 그리고 둘은 길이 엇갈려 헤어진다.
 
시간이 흘러 사방은 어두워지고 숲속에서 길을 잃은 줄리앙은 산짐승과 날짐승의 울음소리에 겁을 먹는다. 무서움에 떨며 산 아래쪽으로 내려오던 줄리앙은 극적으로 보네와 마주친다. 친구들에게 붙잡혀 묶여있던 보네도 간신히 포박을 풀고 도망친 것. 두 소년은 서로를 의지하며 어둠을 헤쳐 산을 내려온다. 도중에 멧돼지를 만나 기겁을 하기도 하지만 둘은 천신만고 끝에 큰길로 내려오게 되고 근처를 지나던 독일군 차량에 발견돼 수도원으로 무사히 귀환한다.
 
줄리앙과 보네는 양호실에 입원한다. 줄리앙은 위문을 온 친구들에게 멧돼지 50마리와 마주쳤었고 독일군들이 자신에게 총을 쏘기도 했다며 과장 섞인 무용담으로 허풍을 떤다. 그런 줄리앙을 보며 보네는 슬며시 미소를 보낸다. 양호실에 단둘이 있게 되자 줄리앙은 자신이 보네의 본명을 알고 있음을 고백한다. 화가 난 보네는 줄리앙과 몸싸움을 벌이지만 그날 이후로 줄리앙과 보네의 사이는 한층 가까워지게 된다.
 
그러던 중 작은 소동이 일어난다. 식당 일을 돕고 있는 조셉이 고기를 훔쳐 내다 팔았다가 덜미를 잡힌 것이다. 알고 보니 그동안 조셉은 심심찮게 식당 보급물품을 빼내 암시장에 팔아온 것으로 밝혀진다. 그리고 그가 아이들과 물물교환으로 받아놓았던 물건들도 발각돼 교장신부의 노여움을 산다. 쫓겨나면 갈 곳이 없는 조셉은 용서를 빌지만 교장신부는 조셉을 해고한다. 그러나 이 사건은 훗날 커다란 비극의 씨앗이 된다.
 
공습경보가 울리던 날, 수업 중인 아이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방공호로 대피해야 하지만 줄리앙과 보네는 음악실로 숨는다. 그리고 둘은 피아노를 마음껏 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늦은 밤에는 플래시 불빛 아래 숨어 아라비안나이트에 쓰인 선정적 구절들을 함께 읽으며 사춘기 소년으로서의 성적 호기심을 해소시킨다. 그렇게 줄리앙과 보네가 우정을 쌓아가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이 해는 바뀌어 1944년이 된다.
 
운명처럼 다가온 그해 1월 어느 날의 아침. 수학공부를 진행하고 있는 교실로 무장한 독일군과 사복차림의 게슈타포 요원이 들이닥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게슈타포 요원은 학생들을 향해 다짜고짜 “장 키펠스타인이 누구냐.”고 캐묻는다. 그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는 교사와 아이들은 당연히 그런 사람은 이곳에 없다고 대꾸한다. 그러나 장 키펠스타인의 존재를 아는 유일한 사람 줄리앙은 보네가 걱정이 되어 그만 교실 뒤쪽의 그를 쳐다보게 된다.
 
그런 찰나의 행동이 엄청난 화근이 될 줄 누가 알았으랴!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눈빛을 지닌 게슈타포 요원은 그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마치 먹잇감을 포착한 맹수처럼 서늘한 표정을 드러내며 천천히 보네의 책상 앞으로 다가간다.
 
게슈타포 요원이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자 보네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말없이 일어난다. 보네는 친구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자리를 뜨려한다. 그리고 막 줄리앙과 악수하려는 순간 보네는 독일군에 의해 떠밀리듯 끌려나간다.
 
“저 아이는 유태인이다. 너희 교장이 저 아이를 숨겨주는 중죄를 범했다. 학교는 폐교됐다. 2시간 줄 테니 짐을 싸서 모두 마당에 집합하도록!” 서슬 퍼런 게슈타포의 일갈에 아이들은 웅성거린다.
 
기숙사로 들어와 짐을 챙기던 보네는 마침 방으로 들어오는 줄리앙을 보자 “걱정 마. 어차피 난 잡힐 운명이었으니까.”라며 오히려 그를 위로한다. 줄리앙은 자신이 보네의 신분을 탄로 나게 만든 것만 같아 심한 자책감에 고개를 들지 못한다. 보네는 자신이 읽던 책을 줄리앙에게 선물하고 줄리앙은 아라비안나이트를 보네에게 건넨다.
 
독일군은 기숙사를 더 뒤진 끝에 듀프레와 네구스라는 이름의 유태인 소년 두 명을 더 찾아낸다. 그런데 이 모든 사달은 기숙학교에서 해고된 조셉의 밀고로 벌어진 일이다. 학교에서 쫓겨난 뒤 앙심을 품은 조셉이 교장신부의 은밀한 행위를 독일군에게 고해바친 거였다.
 
전교생이 모두 마당에 도열한 가운데 교장신부 장 페레(필립 모리에)와 보네, 듀프레, 네구스가 끌려나온다. 아이들은 “신부님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하고 교장신부 역시 “안녕, 얘들아 곧 다시 보자.”고 답한다.
 
기숙사의 좁은 문을 나서던 보네는 고개를 돌려 줄리앙을 힐끗 바라본다. 줄리앙은 안타까운 마음에 힘없이 손을 들어보지만 거칠게 잡아끄는 독일군 때문에 보네의 모습은 이내 시야에서 사라진다.
 
부끄러운 과거에 대한 감독의 고해성사
 
영화 속의 줄리앙은 루이 말 감독의 분신이다. 루이 말 감독은 자신이 열두 살 시절 가톨릭 기숙학교에 다니며 체험한 것을 토대로 각본을 직접 쓰고 제작과 감독을 맡을 만큼 이 영화에 강한 애착을 보였다. 유년의 가슴 아픈 추억을 간직해 온 그에게 ‘굿바이 칠드런’의 영화화 작업은 마치 고해성사와도 같은 숭고한 의식이었으리라.
 
영화 끝부분에 루이 말 감독이 그의 육성으로 그날 이후의 상황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 다음과 같이 흘러나온다.
 
 
 “보네, 네구스, 듀프레는 아우슈비츠에서 사망했다. 장 신부님은 마우트하우젠 수용소에서 돌아가셨다. 학교는 1944년 10월에 다시 문을 열었다. 40년도 더 지났지만, 나는 죽는 날까지 그 1월 아침의 모든 순간들을 잊지 못할 것이다.”
 
이처럼 영화는 유태인 박해라는 나치의 잔인한 역사가 프랑스의 한 기숙학교를 어떻게 스치고 지나갔는지, 그리고 그 잔인한 추억이 수십 년 동안 한 사람의 마음속에 얼마나 짙은 그림자를 드리워 왔는지를 담담하게 보여 준다. 감동을 강요하거나 슬픔에 동요하도록 유도하는 드라마적 기교나 트릭은 애초에 배제한 채. 그리고 40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영화감독이 된 루이 말은 암울한 시대에 저당 잡혔던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털어놓음으로써 비로소 자신을 짓눌러왔던 마음의 짐 하나를 내려놓게 된다.
 
영화 중에 눈여겨 볼만한 장면이 하나 있다. 학생들이 강당에 모여 영화를 감상하는 장면이다. 공습경보가 울리는 전쟁의 와중에서도 소년들은 단체로 영화를 관람하며 잠시나마 즐거운 시간을 갖는데, 극 중에서 상영되는 영화는 찰리 채플린의 1917년 흑백 무성영화 ‘이민선(The Immigrant)'이다.
 
소년들은 찰리 채플린 특유의 코믹연기를 보며 천진난만하게 폭소를 터뜨린다. 공포와 시름을 잊어버리고 영화에 몰두하여 까르르거리는 그 모습이 그렇게 보기 좋을 수 없다. 찰리 채플린의 연기 장면도 꽤 길게 나온다. 특히 무성영화인 관계로 스크린 옆에서 교사들이 바이올린과 피아노 즉흥연주로 효과음을 넣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로 1930~40년대에는 그 같은 방식으로 영화에 음향효과를 입혔다고 한다. 이때 피아노를 치는 다벤느 선생으로 나온 인물이 훗날 ‘베로니카의 이중생활(1991)’ ‘세가지 색 레드(1994)’에 출연하며 연기파 배우로 입지를 다진 이렌느 야곱(53)이다. ‘굿바이 칠드런’은 그녀의 영화 데뷔작이다.
 
루이 말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가스파르 마네세(1975~ ). 똑똑하고 감수성 예민하며, 강한 호기심과 활발한 성격의 줄리앙 역을 맡아 미소년 이미지를 뽐낸 그는 현재 배우 겸 뮤지션, 작곡가로 활동 중이다. 비극의 운명을 타고난 유태소년 보네 역으로 깊은 인상을 심어준 라파엘 페예(1974~ )도 배우와 감독, 작가로 일하고 있다. 둘은 공교롭게도 유태인의 혈통을 타고난 공통점을 안고 있다.
 
누벨바그 사조를 대표하는 영화 ‘사형대의 엘리베이터(1957)’로 일약 국제적 감독의 반열에 오른 루이 말(1932~1995)은 도덕적 금기를 넘어서는 파격적인 주제와 노골적인 성애묘사로 이따금 논란의 대상이 된 인물이다. 특히 1993년에는 며느리가 될 여자와 금지된 욕망의 로맨스를 나누는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데미지(제레미 아이언스/줄리엣 비노쉬 주연)’가 한국에서 사회규범상의 문제로 수입 금지되자 내한해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영화는 부분수정을 조건으로 1995년 개봉됐다. 1980년 자신보다 14살이나 적은 미국 여배우 캔디스 버겐과 결혼해 슬하에 딸을 하나 두었으며 1995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향년 63세.
 
영화의 라스트. 루이 말의 고백이 담긴 내레이션의 등장은 영화의 사실감을 증폭시켜 전율을 불러온다. 비정한 그해 겨울 아침의 비극을 전달하는 카메라는 줄리앙의 두 눈에 고인 눈물마저 차마 담아내지 못한다. ‘어차피 잡힐 운명이었다.’며 어른스럽게 줄리앙을 위로하는 보네. 그리고 아이들에게 작별 인사를 보내는 교장 신부. 그는 아이들과 다시 만날 것을 희망하지만 그의 바람은 영원히 이뤄지지 않는다.
 
이별의 장면은 짧지만 여운은 길다. 불 꺼진 스크린 위로는 서정적인 아르페지오 반주가 흐른다. 마치 불우한 시절 소년이 겪은 성장통을 위로하듯, 소년의 마음에 단단히 박힌 굳은살을 어루만지듯, 슈베르트의 멜로디는 느리고 나직하다.
 
 

silverinews 진고개 신사  news1@silver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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